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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황궁’ 덕수궁] '개혁 군주' 고종황제가 거처한 덕수궁…일제강점기에 원형 훼손

입력 2016-11-28 16:09:51 | 수정 2016-11-28 16:09:51 | 지면정보 2016-11-29 B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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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경운궁)의 역사

임란 이후 선조의 임시 거처
광해군때 경운궁으로 불러
이후 200여년간 빈 궁궐로 방치

1897년 대한제국 출범의 현장
아관파천 후 고종이 거처로 써
대대적 확장…현재의 3배 규모
1904년 화재…전각 대부분 소실
고종 퇴위 후 덕수궁으로 개명

근대사 잃어버린 자화상 '석조전'
덕수궁의 정전…하딩이 설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
영친왕·이방자 여사 주로 거주
해방 후 미·소공동위 회의 장소
덕수궁 전경. 중요한 건물로는 중화전(보물 제819호)과 중화문, 함녕전(보물 제820호), 석조전, 석조전 서관, 정관헌, 석어당, 덕흥전, 준명당, 즉조당, 대한문, 광명문 등이 꼽힌다.기사 이미지 보기

덕수궁 전경. 중요한 건물로는 중화전(보물 제819호)과 중화문, 함녕전(보물 제820호), 석조전, 석조전 서관, 정관헌, 석어당, 덕흥전, 준명당, 즉조당, 대한문, 광명문 등이 꼽힌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몽진했다. 한양 4대문 안의 경복궁과 창덕궁 등 궁궐과 주요 업무시설은 성난 백성과 왜군이 파괴한 데다 방화로 변변한 건물이 없었다. 이듬해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서인 핵심 인물인 심의겸의 집과 성종(9대)의 형인 월산대군 저택 등 파괴되지 않은 집들 주변에 목책을 두르고 임시 거처인 시어소(時御所)로 삼고 정릉동 행궁이라 했다. 이것이 덕수궁의 시작이다. 왜군 주둔지였기에 그나마 파괴되지 않은 건물이 있었다.

선조는 이곳에서 민심을 수습했고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과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가 이곳에서 즉위했다. 광해군은 정릉동 행궁에 경운궁이란 궁호를 붙인 뒤 재건한 창덕궁에서 살았다. 이후 200여년간 별궁이 된 경운궁은 거의 빈 궁궐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경운궁은 1897년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 한국 근대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경복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경운궁을 수리해 거처로 삼았다.

외국 공사관이 밀집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 세계 열강을 등에 업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겠다는 의도에서다.

대한제국의 황궁이자 상징공간

환구단은 중국 칙사들이 묵는 장소이자 그들을 접대하는 곳이었다. 고종은 이곳에서 1897년 10월12일 황제로 즉위했다.

황제의 궁답게 경운궁은 정전(正殿: 임금이 조회를 하는 건물)인 중화전이 황색이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의 답도(踏道: 임금이 사용하는 계단)에 봉황이 새겨진 것과는 달리 중화전 답도에는 황제의 상징인 용 문양이 새겨졌다.

대한제국은 대한문 앞에 미국의 방사형 도로체계를 본떠 소공로를 비롯한 도로체계를 정비하고 근대적 의미의 시장인 남대문시장과 파고다공원 등을 만들어 국가체계를 바로잡았다. 이 모든 것을 지휘한 개혁군주는 고종황제였고 그 중심에는 경운궁이 있었다.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전성기 시절 경운궁은 현재 넓이의 3배에 달하는 큰 궁궐이었다. 미국대사관저 건너편 서쪽에는 중명전을 비롯해 여러 전각이 있었고, 북쪽에는 역대 임금의 제사를 지내는 선원전 일원이 있었다. 고종은 궐내에 석조전 돈덕전 정관헌 등 양관(洋館)을 건축하면서 구본신참의 의지를 과시했다. 1900년에는 중화전과 중화문을 세우고 경희궁과 연결되는 흥교도 건설했다. 인화문 앞에는 운교를 설치하며 경운궁을 확장했다.

덕수궁 일대 모습.기사 이미지 보기

덕수궁 일대 모습.


1904년 화재로 경운궁 전각이 상당부분 불타버렸다. 2년 뒤 중층이던 중화전은 단층으로 축소돼 중건됐다. 1906년 경운궁 정문인 대안문은 대한문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이 고종 지시로 이뤄졌다는 것을 안 일제는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황제로 즉위시켰다.

돈덕전에서 황제 즉위식을 치르고 순종은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고종황제가 황위에서 물러난 뒤 경운궁은 선황제가 거처하는 궁으로 그 위상이 달라지면서 이름도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공간으로서의 위상도 잃었다.

고종이 승하한 뒤 일제는 1920년부터 선원전과 중명전 일대를 매각하면서 궁역을 크게 줄였다. 일제는 1933년 많은 전각을 철거하고 공원으로 조성, 일반에 공개했다. 이처럼 덕수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원형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세계 열강의 공사관이 밀집한 정동은 독립국가로서의 위엄을 보여주기에 효과적인 장소였다. 그 중심에 덕수궁이 있었다. 10여년의 짧은 기간에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번영과 쇠락을 함께한 역사적 공간이었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살았던 석조전

‘돌로 지은 집’이라는 뜻의 석조전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여준다.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창덕궁의 인정전처럼 덕수궁에도 정전을 세우자는 대한제국 외교 고문이던 영국인 브라운의 발의에 따라 중국 상하이에 있던 건축전문가 하딩의 설계로 지어졌다. 당시 세계 건축학회에서 주목받을 정도로 잘 지은 건물이었고 브라운은 영국 여왕에게 훈장을 받았다.

서양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건축됐다. 건물의 앞과 동서 양면에 베란다가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1층은 시종이 기거하는 방과 부속 시설로, 돌계단을 올라 들어서는 2층은 대접견실과 대기실로, 3층은 황제와 황후가 거처하는 침실과 여러 용도의 방으로 구성됐다. 국권을 빼앗긴 1910년 완공돼 당초 의도대로 황실의 정전으로 사용되지는 못했다.

입식 생활에 불편을 느낀 고종은 석조전보다는 함녕전에서 기거하기를 즐겨 이곳의 실제 사용자는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였다. 이후 경운궁이 황폐해지는 과정에서 석조전은 일본 회화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1938년에 서측 별관이 들어서면서 이왕가미술관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해방 후 미·소공동위원회 회의가 열려 외국 대표들이 나라의 앞날을 논의했다. 대한제국의 존엄을 과시하기 위해 지어졌지만 나라가 기울자 굴욕의 역사를 지켜본 곳이 됐다. 2014년 10월부터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일반에게 제한 관람이 허용되면서 역사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귀족을 가르치는 수학원으로 사용되던 덕수궁 양이재.기사 이미지 보기

귀족을 가르치는 수학원으로 사용되던 덕수궁 양이재.


고종이 승하한 함녕전

함녕전은 고종의 환궁과 함께 1897년 건립된 왕의 침전이다. 1904년 함녕전 온돌을 수리하다가 튄 볼꽃으로 경운궁에서 대화재가 발생했다. 고종은 1919년 이곳에서 기거하다가 68세를 일기로 승하했다. 경운궁 대화재나 고종의 승하 모두 일제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다. 고종 승하 후 함녕전은 고종의 빈전(국상 때 상여가 나갈 때까지 왕이나 왕비의 관을 모시던 전각) 및 혼전(왕이나 왕비의 국장 후 3년 동안 신위를 모시던 전각)으로 사용됐다. 함녕전 뒤편에는 계단식 정원을 꾸몄고 전벽돌로 만든 유현문과 아름다운 장식을 한 굴뚝을 설치했다. 함녕전은 보물 제820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종이 가장 사랑한 건물인 석어당

석어당은 선조 계비인 인목왕후 김씨가 10여년간 감금생활을 한 곳이다.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 뒤 왕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형제들을 차례로 제거하면서 인목대비를 폐위해 경운궁에 유폐했다. 이때 경운궁은 서궁(西宮)으로 불렸다. 서궁 유폐는 반정을 일으키는 구실이 되었다. 반정에 성공한 능양군(인조)은 경운궁으로 인목대비를 찾아가 정통성을 인정받고 이곳에서 즉위한다. 유폐의 한이 맺혀 있던 인목대비는 석어당 앞마당에 광해군을 꿇어앉히고 36가지의 죄를 물은 뒤 능양군에게 옥새를 전했다.

단청을 하지 않아 소박한 살림집을 연상시킨다. 선조가 임진왜란 이후에 임시로 거처하며 흐트러진 민심을 안정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고종이 가장 사랑한 건물이다. 고종은 석어당의 서까래 하나 손대지 못하도록 했을 정도다. 1904년 경운궁 대화재에 소실되었다가 복원됐다.

최승욱 특집기획부장 sw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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