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발 고속철도(SRT)가 다음달 9일부터 운영을 시작한다. 고속철도 시장이 생산자 중심에서 SRT와 KTX가 경쟁하는 소비자 중심의 시장으로 진화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경쟁은 시장경제 활성화와 서비스 혁신의 동기를 제공하고 그 결과 능력있는 기업들만이 살아남는 환경을 만든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은 장기적으로 산업의 비효율성을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장·단기적 순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는 개념이 ‘경쟁적 협력(co-opetition)’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구성원들이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면서도 서로 협력해 산업의 효율성을 높일 때 그 혜택은 고객에게 돌아가게 된다.

고속철도 시장에서 경쟁의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SRT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고객서비스헌장을 제정해 안전한 철도, 선도적인 서비스, 지속적인 혁신 등을 약속했다. 새로 개통되는 SRT는 KTX에 비해 저렴한 운임, 향상된 고객 접근성, 운행의 안정성, 업그레이드된 객차 서비스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좌석 간 거리가 넓어지고 전 좌석에 콘센트를 설치하고 무선인터넷의 속도를 개선해 보다 쾌적한 여행 환경을 제공한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특히 서울 시내의 교통난을 고려할 때 SRT의 이용은 서울 강남권 및 경기 동남권 지역에 거주하는 소비자들에게는 가격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셈이다. 최초로 도입되는 ‘운행 중단 배상금제’도 눈여겨볼 만하다. 고속철도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SRT로서는 적절한 경쟁전략들을 준비한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KTX도 셔틀버스, 사후면세점 제도, 마일리지제도 부활 등 다양한 서비스를 개선하고 기존 고객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을 개발하고 있다.

SRT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어떤 게 있을까. 첫째, SRT는 가치사슬상의 운영 프로세스를 혁신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서비스의 지속가능성을 구현해야 한다. 둘째, SRT는 기업의 정책성을 철도서비스라는 근시안적인 사업 범위에 한정해선 안 된다. 문화생활 공간 확보, 연계 상권과의 시너지 유도, 교통 편의성 확충, 지역 상권 개발 등 생활문화적 공간 제공이라는 개념으로 확대해 이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셋째, SRT는 표적 고객을 설정할 때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모색해 전체 소비자의 사용가치 극대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보면 서비스의 질과 상관없이 입지 접근성이 좋은 SRT를 이용할 소비자, KTX를 이용할 소비자, 출발하는 위치와 상황에 따라 SRT나 KTX를 선택할 소비자로 분류할 수 있다. 따라서 SRT와 KTX가 모든 소비자층에서 경쟁하는 것은 경쟁의 비효율성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SRT는 KTX와 인프라 및 시스템을 공유해 더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SRT와 KTX는 고속철도 시장에서 경쟁자다. 코레일은 SRT 지분을 41% 소유하면서도 독립적인 경영을 보장하고 있다.

이런 지배구조는 ‘경쟁적 협력’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두 운영기관이 경쟁과 협력을 통해 국민에게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산업의 효율성도 높여 궁극적으로 국민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유창조 < 동국대 교수, 한국경영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