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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고민 깊어지고 있다…눈발에도 촛불 타올랐지만

입력 2016-11-27 09:31:30 | 수정 2016-11-27 23:4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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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구 기자 ] 서울 지역 첫 눈이 내린 지난 26일 오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이 분주해졌다. “눈이 많이 옵니다.” “날씨도 추워지네요.” “저녁 촛불집회에 영향 있겠는데요?” “어떡하죠. 다들 가실 겁니까?” “그래도 가야죠.”

눈비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은 삼삼오오 광장으로 향했다. 주말 촛불집회에 출첵(출석 체크)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상당수가 처음 집회에 나오는 이들이다. 풍경도 여느 집회와 사뭇 달랐다. ‘박근혜 퇴진’ 피켓을 들고 아이와 함께 셀카(셀프카메라) 찍는 모습이 거리 곳곳에서 보였다.

지난 26일 서울에서 열린 5차 촛불집회 모습. / 변성현 기자기사 이미지 보기

지난 26일 서울에서 열린 5차 촛불집회 모습. / 변성현 기자


1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이날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주최한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 행사 전후로 촛불집회에 참석한 인파는 주최측 추산 100만 명을 훌쩍 넘겼다.

이날 5차 촛불집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주최측 추산 190만 명, 경찰 추산 33만 명이 다시 한 번 거리에 섰다. 주최측은 집회 도중 들고 나는 인원을 모두 합친 연인원을 집계한 반면 경찰은 특정 시점 단위면적의 순간 최다인원을 파악하는 방식을 사용해 격차가 상당했다.

이러한 ‘출첵’이 언제까지 계속될지에 대해선 입장이 갈렸다. 집회에 참석한 30대 회사원 송모씨는 “대통령이 내려올 때까지 계속 나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온 40대 직장인 김모씨는 “다음 주에는 더 추워질 것 같아 오늘 (5살) 아이와 같이 나왔다”고 말했다.

곧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찾아들고 정치권의 탄핵 일정이 시작되는 만큼 이날 참가인원 정점을 찍고 서서히 ‘일상 속 의견 개진’ 형태로 바뀔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지난 26일 서울에서 열린 5차 촛불집회 모습. / 변성현 기자기사 이미지 보기

지난 26일 서울에서 열린 5차 촛불집회 모습. / 변성현 기자


행사 시간에 맞춰 군중이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이날 오후 5시30분께. 행렬 앞에서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4자씩 끊어 외치는 전형적 집회 구호를 선창하던 사회자의 스피커에서 ‘광고 말씀’이 흘러나왔다.

“박○○ 어린이 어디 있죠? 세종대왕 동상 앞으로 와주세요. 엄마가 찾습니다.” 사람들이 본 행사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에 자리잡은 30여분 뒤 사회자가 다시 한 번 마이크를 들었다. “아까 초등학교 6학년 아이 기억하시죠? 박○○ 어린이. 어머니를 찾았다고 합니다!”

촛불을 들고 ‘하야송’을 흥얼거리던 사람들 사이에서 “와” 하는 환호와 함께 웃음이 퍼져나갔다. 이날 집회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온 동력은 분노였지만 이들이 보여준 행동은 유희에 가까웠다.

앞서의 촛불집회에서도 확인됐듯 이날 거리에서도 세대 차이는 없었다.

조길용 씨(80)는 “우리 손주들까지 젊은 사람들이 애들 쓰는데 (나는) 쓰레기라도 주우려고 왔다”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공도 있고 과도 있는 분이다. 그 딸이 대통령이 됐으면 아버지의 과오는 덮어질 수 있도록 잘 마무리해야 하는데 나라를 이렇게 망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조 씨는 “대통령 주변에 대한 뉴스를 들어보면 사람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내가 마음먹고 여기 와서 이렇게 이름도 밝힌다”고 했다. 함께 참석한 동년배 할아버지 역시 “박근혜가 어서 물러나야지”라고 거들었다.

지방에서 상경한 고교생도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이 학생은 “지난주 집회에서 세월호 유족 분들 발언을 듣고 울컥하더라. 친구들은 기말고사 준비하는데 엄마와 함께 여기 왔다”면서 “오늘은 자유발언 시간에 앞에 나가 얘기해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6일 서울에서 열린 5차 촛불집회 모습. / 최혁 기자기사 이미지 보기

지난 26일 서울에서 열린 5차 촛불집회 모습. / 최혁 기자


행사 시간인 이날 오후 6시가 가까워지면서 광화문은 인파로 가득 찼다. 주최측은 “광화문 광장이 비좁으니 스크린이 설치된 시청 앞 광장 쪽으로 분산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2주 전 집회에도 참석했다는 이성진 씨(31)는 “그때는 오후 8~9시쯤 왔는데 오늘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여성희곡낭독회’ ‘징검다리교육공동체’ 등의 깃발이 눈에 띄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나왔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전국 한시적 무성욕자연합’ 깃발이 지나가자 사람들이 깃발을 가리키며 웃음 짓기도 했다. 깃발 하단에는 작은 글씨로 “나라 걱정에 성욕조차 날아갔다”는 ‘깨알 설명’이 추가됐다.

재치 있는 대학생 과잠(학과 점퍼)도 눈길을 끌었다. 집회에 참석한 한양대생으로 보이는 한 학생은 등판에 적힌 학교 영문명 ‘HANYANG’(한양)의 글자 일부를 가려 ‘HA YA’(하야)로 만든 점퍼를 입고 나오기도 했다.

집회에는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사람들, 가습기살균제 사태 피해자 가족 등도 자리했다. 이처럼 ‘정부에 대한 경고’를 공통분모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던 주변 반응이 다소 뜨악해진 건 고 백남기 농민과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언급됐을 때였다.

하지만 주최측이 백씨나 한 전 위원장과 관련된 특정한 정치적 구호를 외치기보다는 “카카오톡으로 이분들에 대한 응원 메시지를 보내면 서울시 공식 전광판에 뜬다”고 소개하는 정도로 수위를 조절하자 별다른 반발은 일지 않았다.

집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만한 촛불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예단하기 힘들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촛불집회는 탄핵을 추진하는 야권의 가장 큰 동력원”이라면서 “어떤 틀로 사람들의 외침을 담아낼지가 중요해졌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변성현·최혁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chokob@hankyung.com
영상=김광순 한경닷컴 기자 gasi012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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