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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국민투표로 통과된 유신헌법 탄생, 대통령에게 막강 권한 줬으나 반발 심해져

입력 2016-11-25 16:21:28 | 수정 2016-11-25 16:21:28 | 지면정보 2016-11-28 S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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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궁정동 안전 가옥은 허물어지고 지금은 그 자리에 무궁화동산이 조성돼 있다.기사 이미지 보기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궁정동 안전 가옥은 허물어지고 지금은 그 자리에 무궁화동산이 조성돼 있다.

대통령이 의원 3분의 1 추천

1972년 11월,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된 새 헌법은 유신 헌법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유신 헌법에서는 통일주체국민회의가 한국의 최고 주권 기관이었습니다. 국민은 이 회의를 구성하는 대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선거를 했지요. 면이나 동에서 한 명 이상의 대의원이 뽑혔습니다. 대통령선거는 간접선거로 바뀌었습니다. 국민이 직접 투표하여 뽑는 것이 아니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 것입니다.

대통령은 국회의원 전체의 3분의 1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추천할 수 있었습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웬만하면 대통령의 추천에 동의하여 국회의원을 임명했지요. 그래서 실제적으로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을 직접 임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이 이전보다 훨씬 커진 것이지요. 그런 가운데 1972년 12월 박정희는 임기 6년의 제8대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유신 체제는 국민의 불만과 저항을 안고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국민은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지 못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1952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우리 국민은 여섯 번이나 스스로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았지요. 그래서 대통령을 직접 뽑는다는 것을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건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긴급조치에 반대…대통령 시해

유신 체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1973년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집권당인 공화당이 39%밖에 표를 얻지 못한 것이지요. 하지만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 추천으로 임명된 국회의원들로 여당은 국회에서 다수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대학생들과 재야 세력을 중심으로 유신 체제 반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막기 위해 긴급조치를 발동했지요. 유신 헌법은 국가의 안전 보장과 관련하여 중대한 사태가 발생했다고 판단될 때 긴급조치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주었습니다. 긴급조치 내용에는 판사의 영장 없이도 국민을 체포하고 가둘 수 있는 권한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는 국민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법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민족 문화 중흥에도 각별한 애정을 갖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기사 이미지 보기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민족 문화 중흥에도 각별한 애정을 갖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유신 체제는 1979년 위기를 맞았습니다. 훗날 대통령이 된 김영삼이 야당 당수로 뽑히면서 재야 세력과 힘을 합해 본격적으로 저항에 앞장선 것입니다. 9월 김영삼은 뉴욕타임스와 회견을 했습니다. 그런데 김영삼은 이 회견에서 미국 정부가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한국 정부를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정부와 여당은 이 발언을 문제 삼아 김영삼을 국회의원직에서 제명하였습니다.

1979년 10월 중순, 야당과 국민의 분노가 기어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부산, 마산 등에서 대학생 시위가 일어났는데 일반 시민까지 가담하는 소요 사태로 커지게 됐지요. 그곳 시위 현장을 둘러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민심이 이미 유신 체제에서 떠났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재규는 10월26일 서울 궁정동 안전 가옥 만찬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습니다. 이로써 박정희 시대 18년, 유신 체제 7년이 모두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국난 극복정신과 문화중흥 이뤄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면 경제 발전과 10월 유신만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가 목표로 삼은 ‘조국 근대화’는 경제적으로 잘살게 되는 것만을 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를 살면서 식민지 국민으로서의 우리 민족의 병폐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주정신과 명예심이 부족하고 게으른 민족성이 우리 스스로를 가난에 허덕이게 하고 식민지 국민으로 전락하게 했다고 판단했지요. 그래서 그는 우리 사회와 국민이 근본적으로 바뀌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그의 바람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근면, 자조, 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한 새마을 운동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민족 문화 중흥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노력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개발과 함께 문예 중흥 5개년 계획도 펼쳐나갔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문화재가 발굴, 복원되었고 그것들은 지금 우리에게 민족적 자부심을 높이고 조상의 국난 극복 정신을 본받을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되었습니다. 또 문화 예술의 국제 교류를 적극적으로 하여 문화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겠다는 문예 중흥 계획의 목표는 오늘날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한류의 탄탄한 밑받침이 돼주었습니다.

글 =황인희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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