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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포럼] 언어와 이미지 안에 갇히지 말아야

입력 2016-11-24 18:02:39 | 수정 2016-11-24 23:50:13 | 지면정보 2016-11-25 A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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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를 규정할 수 있는 언어와 이미지
그 공고한 틀로 믿음과 행동까지 창출
진정 인간이고자 하면 '생각'을 해야

이주은 < 건국대 교수·미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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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땅 위에 내려놓을 수 있다고, 누군가 이야기했다. 상상이라면 모를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06년 9월의 어느 날, 빽빽한 건물들 사이로 여느 때처럼 한 손에는 커피, 다른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록펠러센터 쪽으로 빠른 걸음을 재촉하던 뉴요커들은 갑작스레 호수처럼 파란 하늘이 눈앞에 나타나는 놀라운 광경에 걸음을 멈췄다. 그것은 거울처럼 매끈한 지름 10m의 스테인리스스틸 원반이었다. 비스듬히 세워진 반짝거리는 거울 원반 안에 하늘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정말로 하늘을 땅 위에 내려놓은 셈인데, 이것이 바로 아니쉬 카푸어의 ‘하늘 거울’이라는 예술작품이다.

예술가는 생각을 현실 속에 구현해 낸다. 만일 카푸어가 하늘을 땅 위에 내려놓겠다는 구상만 하고, 아무 작품으로도 보여주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생각은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을 띠지 못하기 때문에 때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생각이 현실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면 이미지라는 옷을 입어야 한다. 그러나 일단 이미지라는 틀 안에 갇히면 사람들은 쉽게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때로는 이미지 자체가 우상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기도 한다. 만일 전혀 문명화되지 않은 어느 부족이 카푸어의 원반 속에 비친 하늘 이미지를 보고는 진짜 하늘이라고 철석같이 믿어 그 이미지를 숭배한다면 어떻겠는가.

언어도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생각의 틀이 돼 준다. 언어가 우리의 행동을 창출해 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느 남녀가 만났는데 둘의 감정이 사랑으로 발전하게 될지 아니면 그냥 스치는 인연으로 끝날지 아직 모른다고 하자. 10여 년 전만 해도 연애하는 남녀 사이에는 오직 ‘사귀다’와 ‘헤어지다’라는 두 단어만 존재했고, 그래서 옛 시절의 연인들은 사귀느냐 헤어지느냐를 칼로 무 자르듯 결정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에는 ‘썸탄다’는 말이 생겨났고, 이 단어로 인해 사귐과 헤어짐 사이에 제3의 영역이 만들어졌다. 덕분에 연인들은 오래도록 미묘하고 감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시할 만한 단어가 있다. ‘모시다’는 단어인데 이 말은 상대방에게 예를 갖추고 어른을 존경한다는 좋은 원뜻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이 공적인 업무관계에서 공직자의 생각과 행동을 규정하는 데 쓰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령 직장상사를 일컬어 “제가 모시는 분”이라는 말을 종종 쓰는데 이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모신다’는 것은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떠받드는 복종의 뉘앙스가 강하기 때문이다. 직장상사와 직원은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차원에서 동료일 뿐 절대로 주종관계가 아니다.

상사가 시키는 명령을 충직하게 받드는 바람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바로 나치스의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으로 가스실이 설치된 열차를 제작하고 작동시켜 한꺼번에 수많은 유대인을 몰살시킨 장본인이다. 아이히만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었고 정신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었으며 최선을 다해 상부의 지시를 따르던 남자였다. 재판정에 섰어도 그는 떳떳했고 끝내 자기가 무얼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그 재판을 지켜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에게 유죄의 이유를 알려주었다. “당신은 아무 생각이 없었군요. 생각 없음이 죄입니다.”

이미지와 언어가 없다면 우리의 머리는 매우 혼란스러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 생각이 없어진 인간이 이미지와 언어가 규정한 형식적인 틀 안에 갇혀 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진정 인간이고자 한다면 생각이 없어서는 안 된다. 설사 그 생각이 아무것도 아닌 잠재성에 불과할지라도.

이주은 < 건국대 교수·미술사 myjoolee@konkuk.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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