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올 연말 우리 모두 의사가 되자
유년 시절, 겨울 초입이면 김장 담그느라 온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우리 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배추와 무, 고춧가루가 우리 집 마당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왜 그렇게 추웠는지 절인 배추를 꺼낼 때는 살얼음이 얼어 손이 꽁꽁 얼곤 했다. 우리 집은 300포기의 김치를 담그곤 했다. 어머니의 손이 다른 집보다 컸다. 그럴 때면 우리 가족은 늘 비상이었다.

한 번은 어린 마음에 짜증 섞인 투로 “우리 집은 네 식구밖에 안 되는데 왜 이렇게 김치를 많이 담가요?”라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너도 알다시피 아버지가 동네 주민을 치료하고 받은 돈으로 우리 네 식구가 먹고살잖니. 그래서 겨우내 채소 구경하기 힘든 어려운 사람들 나눠주려고 많이 담그는 거야”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서 더 이상 투정을 부릴 수 없었다. 그저 열심히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도와 드렸을 뿐이다. 어머니의 이런 나눔에 대한 실천은 내가 결혼한 뒤에도 계속됐다. 당시 나는 허름한 집에 살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어머님은 동네 할머니들을 매일 집으로 데려와 목욕을 시켜줬다. 물세가 너무 많이 나와 관리인이 수도가 고장난 게 아니냐고 찾아와서 물어볼 정도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머니도 외로운 할머니들을 위로해주는 의사가 아니었나 싶다.

지난 18일, 소외된 이웃에게 김장김치를 나눠주고자 우리 병원에서 ‘사랑의 김장김치 나누기’ 행사를 열었다. 어머니께서 몸소 보여주신 나눔을 필자도 그대로 실천하고자 병원이 자리를 잡고부터는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들에게 전해줄 김치를 직접 담글 때면 매년 필자도 팔을 걷어붙인다.

유한양행의 창시자 유일한 박사는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사회 나눔에 매진했다. 제약회사에서 나온 이익을 토대로 교육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한의대를 갓 졸업한 한의사들이 우리 병원에 오면 후배들에게 늘 일러주는 말이 있다. “의사는 의술로만 치료하지 말고 인술로 치료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의사인 아버지께서 내게 하시던 말씀이다. 기업가나 의사가 아니어도 좋다. 남을 돕는 일은 비록 큰 것이 아니라도 우리 모두가 실천할 수 있다. 주위 어려운 이웃에게 무엇이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이번 연말에는 우리 모두가 긍휼지심을 지닌 의사가 됐으면 좋겠다.

신준식 < 자생한방병원 이사장 jsshin@jase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