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인 애플에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면 대규모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해외 공장의 미국 유턴은 2500만개 일자리 창출 공약을 실행할 트럼프 당선자의 핵심 정책 중 하나다. 애플이 당선자의 요청대로 움직인다면 다른 미국 기업에도 자극이 되겠지만 미국 내 생산 여건은 녹록지 않다.
트럼프 "아이폰 미국서 만들면 세금감면"…애플은 묵묵부답
◆팀 쿡에게서 축하전화 받은 트럼프

트럼프 당선자는 지난 22일 뉴욕타임스 빌딩을 방문해 기자들과 간담회를 한 자리에서 “선거 후 팀 쿡 최고경영자(CEO)에게서 당선 축하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통화에서 “애플이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하면 큰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쿡 CEO에게 제안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쿡 CEO에게 “내가 애플의 큰 공장들을 미국에 건설하도록 할 수 있다면 (대통령 재직 기간에 거둘 수 있는) 굉장한 성과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중국이나 베트남 또는 다른 지역에서 제품을 생산하지 말고 미국에 큰 공장을 많이 지어달라고 당부했다”고 덧붙였다. 애플이 유턴하면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자는 “(쿡 CEO가 내 말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애플 측은 당선자와의 통화 내용과 공장 이전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포드차 발길은 돌려세웠는데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 기간에 앞으로 10년 동안 2500만개의 새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를 위해 당근과 채찍을 함께 내놨다. 법인세 인하(15% 단일세율 도입)와 대대적 규제 완화, 해외 수익금의 미국 내 환입 시 한시적인 저율(10%) 과세(현행 39.5%) 등은 유인책이다.

그는 미국 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뒤 미국에 제품을 역수출할 때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는 ‘채찍’도 빼들었다. 유세하면서 “애플 같은 큰 회사들이 일자리를 외국에서 미국으로 옮겨오도록 압박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이폰을 중국에서 조립해 미국으로 역수출하는 애플로서는 중국산 수입품에 45% 관세를 매기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이 ‘발등의 불’이 됐다.

미국 기업이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할 때 어떤 혜택을 주겠다는 공약은 없었다. 빌 포드 포드자동차 회장은 최근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링컨MKC’ 모델 조립라인의 멕시코 이전 계획을 백지화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멕시코산 수입 자동차에 35%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해왔다.

◆“공장 이전에 현실적 걸림돌 많다”

애플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시넷 등 미 언론은 “트럼프뿐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도 똑같은 주장을 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애플이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스티브 잡스 당시 애플 CEO에게 같은 제안을 했다.

애플이 아이폰 생산거점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데는 적잖은 부담이 따른다. 애플은 중국에서 폭스콘과 페가트론 등 두 곳의 협력업체를 통해 연간 2억대의 아이폰을 생산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6월 폭스콘과 페가트론에 미국에서 아이폰을 생산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라고 했다. 돌아온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미국에서 아이폰7(32GB 제품)을 생산하면 소매 가격은 현재 대당 650달러에서 740~1300달러로 뛰는 것으로 분석됐다.

부품 공급망 확보도 문제다. 아이폰 부품은 20개국 750개 협력사에서 납품받는다. 부품 협력사는 대부분 아시아 지역에 밀집돼 있다. 한국과 대만 반도체 업체가 메모리 모듈을 공급하고, 일본 샤프 등이 디스플레이 장치를 공급하는 식이다. 이런 생산 클러스터를 미국으로 그대로 옮겨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의 보복 여부도 주요 변수

미국 내 기술인력 부족도 인건비 부담과 별개로 미국 내 생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쿡 CEO는 지난해 CBS의 한 프로그램에 나와 “중국 생산설비를 미국에서 가동시키는 데 필요한 8700명의 엔지니어를 채용하는 데만 9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자의 요구를 “다국적 기업의 효율적 생산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정치적 요구”라고 비판했다.

생산거점을 미국으로 옮길 때 예상되는 중국의 보복도 큰 부담이다. 미국 이전으로 인한 생산비용 증가를 감수하더라도 자칫 유럽과 맞먹는 중국 시장을 잃을 수 있다.

워싱턴=박수진/뉴욕=이심기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