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개헌, 국가권력을 축소하는 것이어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그동안 정치권에서 불쑥불쑥 불거지던 개헌 논의가 곧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개헌논의는 권력구조 개편에 쏠려 있다. 국민의 권리신장이나 시장경제의 창달과 같은 논의는 아예 없고 권력쟁탈을 위한 룰(rule)을 각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단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이제 대통령제의 수명은 다했다면서 내각책임제 또는 이원집정제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힘을 받고 있다. 그러나 내각책임제는 우리 실정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제도는 실질적인 행정권을 담당하는 내각이 의회 다수당의 신임에 따라 존속하는 의회중심주의의 권력융합형태다.

이 제도 아래에서는 내각과 의회가 서로 불신임할 수 있어서 정국이 불안정해질 우려가 크고, 내각교체를 위한 총선거도 자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다수의 유럽연합(EU) 국가의 예를 봐도 그렇다. EU 경제가 활력을 잃은 것이 이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일본도 1991년부터 2012년까지 21년간 19번 총리 재신임 또는 경질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계파 보스가 국회의원과 시·도지사 후보자의 공천권까지 장악한다. 내각책임제까지 더해지면 은밀하게 이뤄지던 계파정치의 폐해가 고스란히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소수가 돌아가면서 권력을 독점하며, 정경유착은 고착화되고 부정부패, 권력형 비리, 이권개입, 인사청탁은 통제불능 상태가 된다. 국회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 총리와 장관 등 그 많은 요직을 국회의원들이 독차지한다. 3권 분립 원칙에 중대한 침해다.

대통령제에서는 한 명의 제왕적 대통령이 존재한다면 내각책임제에서는 수십 명의 제왕을 국민이 섬겨야 할 판이다. 줄을 잘 서 장관직에 올라 무능하고 무책임하게 월급이나 받다가 사건이 터지면 물러나는 일이 반복되면 국정은 일관성을 잃고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사자는 한번 반열에 오른 뒤에는 수많은 이권을 종신까지 누리는 일이 일어난다.

대통령은 외교·국방·통일 업무만 전담하고, 총리가 국정 운영을 전담하면 된다는 이원집정제도 전쟁의 위협이 상존하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한가한 말처럼 들린다. 대통령과 총리의 의견 대립으로 ‘식물정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개헌은 권력구조가 아니라 국가의 권력을 강력하게 제한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국민에게 더 많은 경제적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자면 국회권력을 억제해야 한다. 국회의 입법권 독점으로 인한 횡포를 막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정치상황은 대통령제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개성과 통치 스타일의 문제다. 기존의 국정기조를 계승 발전시키기보다는 과거와의 단절과 정치적 보복, 연속성 없는 거창한 프로젝트, 측근 중심의 국정운영, 낙하산 인사 등 인치(人治)가 문제였다. 권력구조가 아니라 권력의 오남용이 문제였던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하고, 미국처럼 연임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논의도 있다. 한국도 과거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었으며, 연임이 가능했다. 그 결과 집권 3년 차부터는 재집권을 위한 온갖 포퓰리즘이 난무했다. 재선이 돼도 1~2년 반짝일 뿐, 퇴임 때까지 레임덕에 빠진다. 복지 포퓰리즘 현상은 매우 심각하게 확대 재생산된다. 이런 사태를 막고 재선의 미련을 버리고 소신껏 국가를 위해 행동하라는 의미로 5년 단임의 임기를 정한 것이다. 재선을 위해 국고를 탕진하고 부채를 과감하게 인수하며 집권 후반부 내내 레임덕에 빠질 위험이 있는 이런 제도는 도입해서는 안 된다.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된 개헌이라면 그만두는 게 낫다. 권력구조가 아니라 국회를 포함한 국가 권력을 축소하는 개헌이어야 한다.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