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영상시대의 범죄, CCTV가 다 보고 있다
얼마 전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새로 단장한 폐철교 위를 산책하고 있었다. 걷는 사람들 사이로 자전거를 탄 사람이 등장하자 갑자기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곳은 보행자 전용구간이므로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 주세요”라고. 그러자 그 사람은 바로 자전거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자전거를 타고 폐철교를 건너는지 알았을까. 감시하는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 그런데 폐철교가 끝나가는 지점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를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CCTV를 통해 자전거를 탄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안내방송을 내보낸 것이다.

이처럼 현대인은 곳곳에 설치된 CCTV와 차량용 블랙박스 등으로 웬만한 상황은 영상으로 모두 찍히게 되는 ‘영상시대’에 살고 있다. 진실을 밝혀야 하는 과학수사 분야에서도 이런 시대의 흐름을 따라 영상분석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2004년에 우리나라 CCTV 설치 대수는 40만대 정도였으나 2015년에는 약 800만대에 이르는 등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과거에는 CCTV 화질이 40만화소 정도로 낮았으나 최근에는 200만화소 정도의 풀 HD급이 등장했다. 360도 회전이 가능한 CCTV, 줌 기능을 장착하고 소리에 반응하는 지능형 CCTV도 나오는 등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영상분석에는 원본 대비 선명한 영상을 획득하는 영상 이미지 개선, 저해상도 영상에서 초고해상도 복원기법을 이용해 자동차번호 등을 알아내는 영상 이미지 분석, 영상 속 범죄자와 용의자를 비교해 동일인인지를 판명하는 동일인 분석, 영상 속 인물의 신장(身長) 등을 알아내는 길이 계측, 영상의 인위적인 합성·삭제·편집 등을 알아내는 합성 및 조작 여부 분석 등 다양한 방법이 적용되고 있다.

실제로 모자,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려 범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사건에서 CCTV 영상 속 인물의 신장을 추정해 범인을 가려낸 사례가 있었다. 이는 영상 속 특정 물건의 길이를 기준으로 수직 및 수평의 기준선과 소실점 등을 정확히 설정해 영상 속 인물의 신장을 추정하는 기법이다. 실제 사건에서 분석된 추정 신장값 오차 범위 내에 용의자의 신장값이 포함돼 범인으로 특정할 수 있었다. 이는 길이 계측의 사례다.

디지털 영상물은 보존 기간이 짧고 자주 덮어쓰기를 해 사용하므로 범행 당시의 영상이 삭제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를 복원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실제로 기부행위가 문제된 선거 사건에서 기부물품을 전해주는 장면이 찍힌 CCTV 영상이 삭제된 사례가 있었다. 대검찰청 영상분석실은 분석과정에서 그 CCTV 기기를 초기화해도 데이터는 삭제되지 않고 그 기기의 일정 부분에 남아 있음을 확인, 사건 당시의 영상을 추출 복원해냈다. 그래서 사건 당사자로부터 기부행위 자체를 자백받을 수 있었다.

이런 영상분석은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심야에 벌어진 성폭력사건에서 차량용 블랙박스에 찍힌 용의자의 용모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구속된 피의자가 영상분석, 통화내역분석 등을 통해 석방된 사례가 있었다. 특히 이 사건에서는 영상분석을 통해 용의자와 눈썹 길이, 턱선, 얼굴 형태 등이 다름이 입증돼 피의자가 혐의를 벗은 것이다. 이는 얼굴의 형태소, 즉 눈·코·입·눈썹 등의 특징, 배열 위치, 크기, 거리, 비율 등 그 계측값을 비교하는 정밀한 동일인 식별절차를 거쳐 용의자와 피의자가 다른 사람임을 밝혀낸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영상기술은 인공지능(AI)과 접목해 더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영상분석 분야에서는 신속하고도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데, 대검찰청 영상분석실에는 분석 경력 14년 베테랑 김동민 분석관이 근무하고 있다. 대한민국 과학수사의 힘은 이런 전문인력의 실력과 열정에서 나온다고 하겠다. 과학수사 전문 인력이 오로지 자신의 일로 승부를 볼 수 있도록 전문 분야로 성장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고, 관리자 이상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근무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하겠다.

김영대 <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