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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Biz] "로펌은 돈·권력보다 법치주의 추구하는 가치집단 돼야"

입력 2016-11-22 18:32:18 | 수정 2016-11-23 05:42:42 | 지면정보 2016-11-23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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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창업자에게 듣는다 - 김인섭 태평양 명예대표 변호사

법관의 존재가치 없어진 80년…한국적 국제로펌 꿈꾸며 사표

법률은 상품 아닌 역사·문화
미국식 영리 위주 벗어나 한국인 정서에 맞는 로펌 창업

약속대로 65세에 일선서 퇴진…사회환원·가치 보존에 온 힘
법치주의 운동에 여생 바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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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로펌들의 덩치가 몰라보게 커졌다. 영국 미국 등 글로벌 로펌도 한국 변호사들의 실력을 인정한다. 개인 법률사무소에서 벗어나 서구식 로펌이 한국에 등장한 지 불과 30~40년 만의 일이다. 법률시장 개방과 장기 불경기로 주춤하고는 있지만 성장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세계적 로펌으로 일궈낸 창업자들을 최근 만나 한국 법률시장의 과거와 나아갈 방향을 들어봤다.

“가난해도 좋으니 대법관까지는 가야지.” 법관직을 그만두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펄쩍 뛰면서 반대했다. 김인섭 판사(태평양 명예대표·고등고시 14회)의 실력을 아는 선후배 판사들도 안타까워했다. 판사를 평생직으로 알고 살아온 그였지만 이미 돌아선 마음이었다. 17년2개월간의 판사 재직 기간은 박정희 정부 시절과 거의 겹친다. 보람도 많았지만 좌절도 적지 않았다. “판사 첫 월급이 1만3000원이었어요. 어머니와 아내, 자식 둘 해서 다섯 식구가 아무리 절약해도 15~20일이면 돈이 다 떨어져 외상을 달고 지냈죠. 더 어려운 시절도 견뎌냈기 때문에 생활고는 큰 문제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절차적 가치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통치시대가 열리니 법관의 존재가치가 없어졌죠. 판사(判事)의 역할을 반도 제대로 못한다고 해서 우리끼리는 ‘반사(半事)’라고 불렀습니다. 지조와 기개가 다 꺾여 더 이상 보람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사표를 던졌죠.” 그의 나이 마흔넷, 1980년 11월의 일이었다.

◆전관예우 포기, 사건수임은 가려서

변호사 개업에 앞서 그는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전관예우 포기, 둘째는 사건을 가려서 수임하기였다. “1980년대만 해도 전관예우가 지금처럼 큰 문젯거리가 안 됐죠. 하지만 이런 일로 친정인 사법부를 욕먹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전관예우에 의존하는 사무소는 길어봐야 3, 4년이면 끝납니다.”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 가르친 후배 판사들과 법정에서 마주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수익과 직결되는 수임을 가려서 하겠다는 발상은 예나 지금이나 파격적이다. 마약 밀수 등 반사회적 성격의 조직범죄 사건, 정치공작 관련 사건, 부동산투기와 악덕 사채업자 사건, 이혼 사건 등이 수임해선 안 될 사건 리스트다.

단독개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꿈은 더 컸다. 한국적 국제로펌을 만드는 것이었다. “시대는 앞서가는데 법률가는 한참 뒤떨어져 있었죠.” 당시 잘나가던 소송 중심 변호사들은 돈 벌어 땅을 사 재테크에 몰두하거나 정계에 진출했다. 인권변호사도 필요하지만 산업화에 발맞출 국제 관련 법률전문가가 시대적 요구라고 그는 판단했다.

◆미국로펌 흉내 안 낸 토종로펌

그렇다고 당시 유행하던 미국식 로펌을 흉내 낼 수는 없었다. 법률은 상품이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뿌리박은 특수한 제도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법률가는 가치집단입니다. 영리 위주의 미국식 로펌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좋은 이웃이면서 국가의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로펌이 필요한 때였죠.” 김 변호사가 그린 한국적 국제로펌은 변호사 전통업무인 송무(소송)를 중심으로 하고 기업법무, 국제법무로 확장해나가는 로펌이었다. 김장리, 김앤장 등 당시 뜨고 있던 로펌은 대부분 미국 유학파들이 세웠다. 업무도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 관련 법률사무와 국제거래분야 법률사무 위주였다는 점에서 태평양과는 출발이 달랐다. 그는 또 고참 변호사를 뜻하는 ‘파트너’와 신참인 ‘어소시에이트’라는 미국 로펌식 용어가 ‘사용자’와 ‘피용자’라는 어감을 풍긴다는 생각에 ‘시니어’와 ‘주니어’로 대체했다.

◆그의 꿈을 믿고 찾아오는 인재들

1986년 12월10일 ‘법무법인 태평양 합동법률사무소’를 정식 설립했다. 영문으로는 Bae, Kim & Lee다. 검찰 간부 출신인 배명인 변호사와 김 변호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출신으로 미국 노트르담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를 취득한 이정훈 변호사의 성을 따서 만들었다. 이재식(1983년), 황의인(1985년) 변호사는 로펌 설립 전에 이미 합류한 상태였다. 설립 이듬해에는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법학석사(LLM) 코스를 마친 뒤 미국 변호사 자격을 딴 오용석 변호사가 들어왔다. 이어 사법시험, 사법연수원 등에서 성적이 우수했던 이종욱, 김인만, 서동우, 오양호, 이후동 변호사 등이 속속 합류했다. 김 변호사는 “태평양에는 촌놈이 많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돈이나 권력을 좇기보다 김 변호사가 추구하는 법률가적 이상과 그의 인품 하나만 믿고 자신의 인생을 건 사람들이 태평양에 모여들었다.

◆은퇴 후의 법치주의 운동

김 변호사는 2002년 12월10일 현직에서 물러났다. 태평양에서도 나왔다. 만 65세가 되던 해였다. 로펌 개소식 날 “65세가 넘으면 직업 변호사를 은퇴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는 “법관과 변호사로서 40여년 이 땅의 법치주의 정착에 최선을 다했다”고 회고했다. 은퇴 후에도 그의 법치주의 운동은 계속됐다. 60세 후반의 각 분야 은퇴자 22명과 1년여간 준비한 끝에 2005년 봄 ‘포럼 19-21’을 출범시켰다. 2008년 5월 포럼을 확대해 만든 것이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다. 김 변호사는 “사회 환원과 무형의 가치를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로펌을 세웠다”면서 “앞으로도 법치가 뿌리내리는 일에 여생을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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