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가 뭐길래] 탈당행 기차에 몸실은 한국 대통령의 불행
새누리당 비주류 국회의원들과 전·현직 광역단체장 등이 지난 20일 ‘최순실 사태’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출당 조치를 요구했다. 박 대통령 징계요구안도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제출했다.

당 윤리위가 내릴 수 있는 징계수위는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권유 △제명 등 4가지다. 탈당 권유를 받은 뒤 10일 이내에 탈당하지 않으면 제명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아닌 당원을 제명하려면 최고위원회의 의결이 필요하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친박(친박근혜)계로 구성돼 있어서 당 윤리위가 탈당 권유 혹은 제명을 결정하더라도 그 징계가 실현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박 대통령이 당원 자격을 유지하더라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기존의 당·청 협력관계를 지속할 수 없게 됐다. 박 대통령이 당원 자격을 갖고 있더라도 형식적일 수 밖에 없다. 당원으로서 영향력은 커녕, 최소한의 권리 행사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당에 남아 있어도 떠난 것이나 다름없다. 비주류의 탈당 요구가 거세지면 박 대통령이 스스로 당을 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한국정치사의 불행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5명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4명이 소속정당을 떠났다. 정권말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게이트’가 터지면서 탈당했다. 형식적으로는 탈당이지만 ‘천덕꾸러기’신세가 되면서 쫓겨난 것이나 다름 없는 조치를 당한 것이다. ‘미래 권력’은 차기 집권을 위해 걸림돌이 되는 ‘현재권력’을 제거해야 하는게 관행처럼 반복됐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집권 3년차만 되면 힘이 빠지고 당과 권력의 균형에서 밀리게 되면서 결국 탈당으로 귀착된다. 그러다 보니 국정운영은 초반 힘을 받다가 후반 공백이 생기곤 했다. 국정은 정권에 관계 없이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하지만 한국에선 이렇게 정권이 바뀔때마다 ‘스타카토(음을 하나하나 짧게 끊어서 연주하는 연주법)’ 처럼 단발에 그치곤 했다.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 초반 진행됐던 창조경제를 비롯한 각종 정책들은 이제 맥을 끊게됐다. ‘국정운영 진공’상태가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힘차게 추진했던 녹색정책은 현재 어디가고 없다. 적어도 미래성장 정책에 관한한 정권에 관계 없이 이어져야 하지만 정권말만 되면 대통령은 힘을 잃어 당적을 정리하고, 미래 권력은 ‘현재 권력’의 흔적 지우기에 나서기 급급한게 그간의 관례였다.

소속 정당 탈당의 첫 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1987년 민주정의당 후보로 나서 대선에서 이겼던 그는 민정·민주·공화 3당 합당을 성사시켜 민자당을 만들었다.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민자당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SK그룹의 이동통신허가문제를 들고 나왔다. 또 그해 3월 총선에서 관권선거 논란에 휩싸인 것과 관련, 노 전 대통령에게 선거관리 중립내각을 요구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결국 1992년 9월 노 전 대통령은 민자당을 떠났다. 노 전 대통령은 거국내각을 선포하고 현승종 당시 한림대 총장을 총리로 임명했다.

5년 뒤인 1997년 대선을 한달 앞둔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와 갈등을 벌인 끝에 당을 떠났다. 이 후보는 김 전 대통령의 이인제 후보 지원과 ‘김대중 비자금’ 수사유보 결정에 반발,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2년 5월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자신의 세 아들에 대한 비리 의혹이 원인이 됐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 카리스마를 보유한 명실상부한 ‘오너’였지만 차기 대선을 앞두고 위기를 느낀 집권당의 ‘미래권력’앞에선 가차없이 공격을 당했다. 직계 의원들로부터도 돌팔매질 당하면서 당을 떠나지 않고선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2월 자신이 만든 열린우리당을 떠났다. 각종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면서 지지율이 급감하자 열린우리당 친노무현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의원들의 거센 탈당 요구를 받았다. 이후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흡수, 통합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특수한 경우다. 집권당이었던 한나라당 내 견고한 반대세력이었던 친박(친박근혜)계가 버티고 있어 국정운영이 여의치 않았다. 세종시 수정안이 박근혜 당시 의원의 반대로 무산된게 대표적인 예다. 그렇지만 고비때 마다 이 전 대통령은 박 의원과 청와대에서 만나 타협하면서 임기말 탈당이라는 관행을 끊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2월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이 전 대통령의 탈당 문제와 관련, “역대 정권 말기마다 대통령이 탈당하는 일이 반복돼 왔지만 과연 그게 해답이 됐는가. 지금 국민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 고치고 해결하는게 우선”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 박 대통령도 ‘타의’에 의해 탈당을 강요받는 처지로 몰렸다. 이미 거센 탈당을 요구를 받고 있는 것 자체가 한국정치 후진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