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국·영국 신고립주의, 힘의 균형추 살펴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예상 밖의 선거 결과에 대한 후유증을 국제사회가 여전히 체감하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향후 세계 경제와 안보 문제에 대한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의 공통된 배경은 양국 보수진영의 분열이다. 브렉시트 문제에 대해 영국 보수당 내에서 보인 분열 양상은 현재진행형이고, 미국 공화당 내 분열은 트럼프 같은 아웃사이더를 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만들었다. 양국의 선거에 나타난 특징은 백인 노동자들에게 잠복해 있던 국수주의의 표출이 다른 선거 쟁점들을 압도했다는 것이다. 양국의 또 다른 공통점은 백인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다.

양국이 이 같은 선거 결과에 도달한 이유는 앵글로색슨식 자본주의가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복지에 중점을 둔 독일의 라인 자본주의와 달리 금융산업에 의존해 이윤 극대화에 중점을 둔 앵글로색슨식 자본주의가 분배 문제에서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이다.

영국과 미국이 같은 고립주의 길을 택했다고 해서 양국 관계가 가장 공고했던 시기인 마거릿 대처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로 돌아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트럼프의 세계관이 테레사 메이 총리의 외골수적 성격 및 제한된 리더십 역량과 결합될 여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국방과 정보 공유에서의 협력은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5개국으로 구성된 ‘파이브 아이스(FIVE EYES)’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중심으로 실무진 차원에서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더불어 브렉시트와 영국 경제력 약화로 인한 영국의 국방비 감축에 따라 영국이 미국의 핵 우산 속에 들어갈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양국 관계는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브렉시트로 인해 미국은 유럽연합(EU) 안에서 자국의 경제적,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증진시켜 줄 ‘트로이의 목마’를 잃게 됨으로써 미국과 EU의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협상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2차 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고, 트럼프의 당선을 부끄러워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이 두 역사적 선거가 간발의 차이로 결정났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결정 100일 기념으로 영국의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시행한 조사 결과는 또 다른 충격을 준다. 응답자의 77%가 ‘브렉시트로 영국 경제가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응답했고, 또 77%가 ‘브렉시트로 영국의 국제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답했다. 52 대 48의 근소한 차이로 브렉시트가 결정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고립주의는 보호무역주의와 상통한다는 측면에서 그간 주도권을 행사해 온 앵글로색슨의 국제적 영향력이 축소될 전망이다. 힘의 균형은 힘의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두 나라가 택한 고립주의는 힘의 균형에 균열을 초래하고, 여기서 생긴 공백은 다른 리더십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향후 국제 역학관계 변화 조짐을 우려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다.

조명진 < EU 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유럽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