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까칠한' 박 과장도 촛불집회에?…동료애 '활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매주 토요일 최대 100만명(지난 12일·주최 측 추산)에 이를 정도로 많은 시민이 집회 장소에 몰려들고 있다. 직장인이면서 시민의 한 사람인 김과장 이대리 중에도 연일 튀어나오는 최순실 국정 농단 문제에 분노해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이가 많다.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와 함께 서울 광화문광장을 찾은 김과장 이대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광화문광장서 뭉치는 직장 동료들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모 과장은 팀 동료 5명과 19일 광화문 촛불집회 때 시민에게 무료로 핫팩을 나눠줬다. 이들이 이날 준비한 핫팩은 4000여개에 달했다. 동료와 지인들로부터 약 150만원을 후원받았다고 한다. 김 과장은 “첫 번째 집회 때 보니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가 많았다”며 “동료들과 고민 끝에 집회에 나온 아이들을 위해 핫팩을 나눠주기로 했다”고 했다.

김 과장과 직장 동료들은 평소 사내에서 여러 사회적 주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해왔다. 이번 ‘핫팩 무료 나눔’도 김 과장이 12일 집회에 참석한 경험을 얘기하다 “그렇다면 다 함께 참여하자”는 제안에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김 과장의 동료 이모씨는 “동료뿐만 아니라 가족도 함께 나와 동료들과 더 돈독해진 것 같다”며 “날씨가 점점 추워져 다음주엔 더 많은 핫팩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참여를 독려하며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업체도 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 대리는 11일과 18일 2주 연속 오후 3시에 퇴근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위해 근무시간을 줄여주라는 사장의 지시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촛불집회 참여를 강요한 건 아니었다. “자율에 맡기되 별일 없으면 참석하라는 독려 정도여서 큰 부담은 없었다”고 박 대리는 설명했다. 박 대리는 “우리 사장님을 다시 봤다고 말하는 직원이 많다”고 말했다.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서 뜻하지 않게 상사를 만나 ‘동지애’를 키우기도 한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성모 대리는 지난 주말 친구들과 함께 광화문광장에 나갔다가 직장 상사인 홍모 과장과 마주쳤다. 홍 과장은 평소 ‘프로 시비꾼’으로 불릴 정도로 트집을 잘 잡는 상사였다. 성 대리는 ‘일은 안 하고 이런 데 나오느냐’고 꼬투리를 잡힐까봐 걱정부터 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홍 과장은 무척 반가워하며 두 손을 부둥켜 쥐었다. 가족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성 대리는 가족과 함께 진지하게 촛불을 밝히는 홍 과장의 모습에 놀랐다. 그 뒤로 그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한국과 일본이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다는 모 정치인의 말이 떠오르더군요. 예전에는 얄밉던 과장님께 전우애가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촛불집회가 ‘만남의 장’으로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20대 여사원 이모씨와 친구 두 명은 12일 모 기업에 재직 중인 남성 세 명과 3 대 3 미팅을 하기로 몇 주 전 약속을 잡아놨다. 그런데 이날 대대적인 촛불집회가 예정돼 있어 이씨와 친구들은 고민이 됐다. 집회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오래전에 약속해둔 미팅을 파할 수도 없었다. 그때 상대편 남성들이 먼저 “광화문에서 같이 집회에 참가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왔다. 이들은 오후 4시께 광화문에서 만나 약 네 시간을 현장에서 보냈다. 이후 신촌으로 옮겨 늦은 저녁을 먹으며 ‘진짜 미팅’을 했다. 이씨는 “졸지에 집회와 미팅을 동시에 하는 ‘1석2조’의 경험을 했다”며 “오랜만에 휴일을 알차게 보낸 기분”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정모 차장은 촛불집회를 통해 10여년 만에 동창회를 열었다. 대학 졸업 후 띄엄띄엄 만나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단체 카톡방을 통해 촛불집회에 함께 참여하기로 해서다. 대학생 때 함께 시위했던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뭉친다며 은근히 설레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촛불집회 당일 정 차장과 친구들은 집회에 참석했다가 인근 술집으로 이동해 밤늦게까지 모임을 이어갔다. “나이가 들면서 사는 모습이 달라지고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친구들인데, 이번에 옛 추억도 되새기고 다시 친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다만 우리가 싸우던 현실이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좀 울컥했죠.”

미디어 회사에 다니는 박모 대리는 대학 때부터 교류해온 외국인 친구들로부터 최근 이메일과 전화가 쏟아져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12일 100만명이 참여한 시위가 평화롭게 끝난 뒤 떳떳하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고 답했다. 19일에는 한국 시위를 직접 보고 싶다는 중국 친구 몇 명이 아예 휴가를 내고 한국에 왔다. 중국엔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시위가 전면 금지됐다. “중국 친구들이 최순실 사태 초기엔 ‘민주국가라던 한국이 왜 이렇게 됐느냐’고 좀 비웃었는데, 광화문 시위를 직접 보고선 이런 멋진 시위문화와 민주주의를 오히려 부러워하는 눈치더라고요. 하하.”

평화 시위 ‘국민성’에 힐링

대기업 직원 김모씨는 12일 처음으로 광화문 촛불집회에 다녀왔다. 많은 인파에 서 있기조차 힘들었지만 어린 학생들이 과자 귤 등을 서로 나누며 힘든 기색 없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손을 잡은 여성에게 길을 비켜주는 사람도 많았다. 집회가 마무리되자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청소를 시작했다. 한 중년 여성이 촛농이 떨어진 도로까지 깔끔하게 닦아내는 모습에 김씨는 울컥했다. “그동안 ‘헬조선’이라며 나라를 원망만 해온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됐어요. 늦게까지 있다 보니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힐링’한 느낌에 가슴이 벅차오른 하루였습니다.”

반면 유통업체에 다니는 강모 대리는 촛불집회에서 만난 직장 동료 때문에 씁쓸했다. 회사 상사인 안모 과장은 광화문에서 촛불 모양 LED 전등을 팔고 있었다. 안 과장은 “지난주에만 초를 팔아 78만원을 벌었다. 부업으로 쏠쏠하다”며 웃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민이 자기 돈으로 쓰레기봉투며 먹을 걸 사서 나눠주는 상황에서 이윤을 남겨가며 전등을 파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강 대리는 “같이 나갔던 여자친구가 ‘시위 때 초를 팔아야 할 정도로 회사가 어렵냐. 회사 사람들이 원래 다 저러냐’고 묻더라”며 “평소에도 좋아하지 않던 상사였지만 집회에서 마주친 뒤 없던 정도 뚝 떨어졌다”고 한탄했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