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자신감은 '각오'가 아니라 '준비'다
날씨가 무척 쌀쌀해졌다. 더 추워지면 골프장도 문을 닫는지라 지난 주말 모처럼 친구들과 필드로 향했다. 모이면 언제나 같은 모습이 반복된다. 우선, 이동하는 길에서부터 일행은 자신감이 넘친다. “오늘 홀인원이 나오면 어쩌나” 괜한 걱정부터 “내기에 이겨서 저녁 얻어먹겠구먼” 김칫국을 마시는 친구까지, 벌써 본인들이 1등으로 라운딩을 마친 것처럼 기고만장이다.

라운딩을 시작하면 자신만만하던 친구가 뒤땅을 치거나 ‘오비’(out of bounds)가 나서 게임을 망치고 ‘백돌이’(골프에서 초급자를 의미)라고 놀림당하던 친구가 장거리 퍼팅을 쏙쏙 집어넣는 이변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한 홀 두 홀 게임이 이어지면 적나라하게 실력이 갈리게 마련이다. 대개는 주중에도 한두 번, 주말에는 거의 매번 연습장에서 꾸준히 실력을 닦아온 친구가 어김없이 이긴다.

내기에 져 풀이 죽은 친구들은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안 좋았다” “오십견이 도졌다”는 등 핑계를 쏟아내고 “다음에는 각오하라”고 호언장담을 남발한다. 반면 이긴 친구는 말도 없고, 딱히 자랑도 하지 않지만 특이한 점이 있다. 골프채를 잡는 손가락에 뚜렷하게 보이는 굳은살이 그것이다. 두껍게 박혀 있는 굳은살은 열 마디 다짐보다 우리에게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굳은살을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이자 동양인 최다승(124승) 기록을 보유한 야구선수 박찬호다. 그는 후배들에게 종종 이런 조언을 한다고 한다. “자신감은 각오나 다짐이 아니라 준비다. 어디에 어떤 공이든 바로바로 던질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이 자신감이다.”

보험회사를 경영하는 최고경영자(CEO)로서 요즘 같은 시기에는 박찬호의 애정 어린 조언을 곱씹어보게 된다. 수년 내 국내 보험사에 적용되는 회계기준에 큰 변화가 예고돼 업계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이 시점에 아무 준비 없이 미래를 낙관하는 것은 연습 없이 라운딩하는 것과 같다. 성과는 막연한 계획이나 구호가 아니라 완벽한 준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당장 불편함이 있더라도 고객과 회사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면 묵묵히 그 길을 가겠다고 다짐해본다. 라운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친구의 굳은살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돈다. 자신감은 각오가 아니라 준비다.

하만덕 < 미래에셋생명 부회장 affirmation01@miraeass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