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보호무역주의를 포함한 자신의 공약을 이행할 의지를 보이자 신흥국 경제에 비상벨이 울렸다. 멕시코 등 미국과 교역 비중이 큰 신흥국이 비상계획을 가동했다.
[트럼프발 금융 불안] '트럼프발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 … 신흥국 비상계획 가동
◆트럼프 경고등 켜진 신흥국

투자은행(IB)들은 이 중 대외개방도가 높은 국가들이 우선적으로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제금융센터가 해외 IB의 보고서를 취합한 ‘한국 경제에 대한 해외시각’ 자료를 보면 BNP파리바는 한국이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받을 충격이 신흥국 가운데 매우 클 것이란 분석까지 내놨다. 트럼프 후보의 당선에 따른 국가별 취약성지수를 산출한 결과 한국은 20개 신흥국 가운데 말레이시아, 헝가리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 취약성지수는 대미수출 비중, 수출의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등의 변수를 적용해 산출됐다. 보고서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대외개방도가 높은 한국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BNP파리바는 “앞으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 한국의 외국인 자금유출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멕시코 컨틴전시 플랜 가동

멕시코 중앙은행은 17일(현지시간) 전격 금리 인상에 나선 데 이어 캐나다와 공동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등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하기로 했다. 양국 정상은 19~20일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별도의 양자 회담을 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이나 폐기에 대비한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때부터 멕시코가 가입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협상하거나 폐기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멕시코산 수입품에 관세 35%를 부과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지난 8일 미국 대선 이후 페소화 가치는 13% 급락했고, 자산가치 하락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장 이탈이 가시화하고 있다. 주요 투자은행은 내년 멕시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1.7~1.9%로 낮췄다. 올 상반기 멕시코에 이뤄진 외국인 직접투자(FDI) 144억달러 가운데 미국 비중은 35%를 차지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외국 기업들이 멕시코 투자 결정을 내리고도 집행하지 않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멕시코와 달리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트럼프 당선 직후 경기악화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연 2.0%인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1.75%로 내렸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은 데다 시장 변동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금리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트럼프 탠트럼 우려 과장” 반론

트럼프 당선자의 정책이 신흥시장에 미칠 혼란이 과장돼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013년 Fed의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테이퍼 탠트럼(발작)보다 충격이 적을 것이라는 반론이다. 당시 신흥시장에서는 400억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증시가 폭락하는 사태를 겪었다.

WSJ는 최근 신흥국 경제가 당시보다 호조를 보이고 있고, 대외건전성도 개선돼 크게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당선자의 공약 중 하나인 보호주의의 충격도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미 국제무역 규모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축세를 보여 신흥국들이 상당 부분 적응했다는 분석이다. 올 들어 국제 유가가 21% 상승한 점도 원자재 비중이 높은 신흥국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WSJ는 신흥시장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절하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채권금리 상승 등 자금조달 비용이 늘겠지만 급격한 자금유출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