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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학 공업은 선진국 산업" 다들 반대만 할 때 박정희 대통령 밀어부쳐…100억 달러 수출시대 열어

입력 2016-11-18 16:21:57 | 수정 2016-11-18 16:21:57 | 지면정보 2016-11-21 S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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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쌤이 전해주는 대한민국 이야기 (42)
소양강 다목적 댐. 국토종합개발계획으로 건설된 댐은 가뭄과 홍수의 굴레에서 해방시켜주었다.기사 이미지 보기

소양강 다목적 댐. 국토종합개발계획으로 건설된 댐은 가뭄과 홍수의 굴레에서 해방시켜주었다.

다목적 댐 건설…가뭄·홍수 굴레 해방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은 10년 동안 계속될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중심 사업은 다목적 댐의 건설이었습니다. 이때 한강 유역에는 소양강댐과 충주댐이, 낙동강 유역에는 안동댐과 합천댐이, 금강 유역에는 대청댐이, 영산강 유역에는 장성댐 등이 건설되었습니다. 이 댐들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가뭄과 홍수에 의한 농사 피해를 근원적으로 없애주었지요. 또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해주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1월 ‘중화학공업화 선언’을 하였습니다. 중화학공업화 계획의 핵심은 철강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 화학 공업을 6대 전략 공업으로 선정하고 1981년까지 전체 공업에서 중화학공업의 비중을 51%로 늘리는 것이었지요. 이와 함께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와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국내외에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철강 기계 조선 화학 공업 등은 산업혁명 이래 오랫동안 선진국들이 독점해온 분야였습니다. 거기에 한국과 같은 후진국이 뛰어들어 그들과 경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였던 것이지요.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그 모험적인 투자를 강행하기로 성큼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중화학공업화는 민간 기업이 주체가 되어 추진되었습니다. 기업가들은 처음에는 참여를 망설였습니다. 성공 가능성이 적어보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보이자 조금씩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섰습니다. 여기에 다수의 국민이 호응하였습니다.

제조업 육성 위해 기능공 양성

정부는 1972년부터 10년 동안 무려 100만 명에 가까운 기능공을 양성하였습니다. 기계공고 학생들의 반 이상에게 학비를 면제하고 장학금을 주어 재학 중에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이들은 졸업 후 중화학공업 분야의 대기업에 우선적으로 선발되었지요. 이렇게 우수하고도 수많은 인적 자본이 중화학공업화를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 되었습니다.

중화학공업화의 실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기계 공업을 제외한 다른 공업들은 처음 세웠던 목표를 넘어섰습니다. 1978년까지 한국 경제는 해마다 1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1974~1975년 오일쇼크 때는 6`8%로 성장이 주춤했을 뿐이지요.

1973년부터 5년 동안 제조업의 성장률은 20%나 되었습니다. 1979년에는 전체 제조업에서 중화학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54%였으니 제조업의 성장은 곧 중화학공업의 성장이었습니다. 또 그해 수출한 공산품 중에서 중화학 제품은 48%에 달했습니다. 수출 100억 달러, 국민소득 1000달러의 목표도 계획보다 4년이나 앞서서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오일 쇼크라는 위기는 한국 경제에 의외의 기회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석유 가격이 올라 거액의 오일 머니를 벌어들인 중동 지역에 건설 붐이 일었던 것이지요. 뜨거운 사막 지대인 중동에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놀라울 정도의 인내심으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1975`1979년 사이에 중동 건설을 통해 한국 경제가 벌어들인 외화는 205억 달러였습니다. 이는 같은 기간 총 수출액의 40%에 가까운 큰 금액이었습니다.

박정희 기념관. 10월 유신의 명분은 당시 국가 체제로는 국제 정세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기사 이미지 보기

박정희 기념관. 10월 유신의 명분은 당시 국가 체제로는 국제 정세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월남패망·미군철수…10월 유신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화 성과 뒤에는 10월 유신이라는 그늘도 있었습니다. 1967년과 1971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은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 주도형 개발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대신 대중경제론은 내놓았지요. 이는 수출 시장이 아니라 국내 시장을 주력 무대로 하고 대기업이 아니라 농업과 중소기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자는 정책이었습니다. 이제껏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해온 개발 정책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정책이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박정희 대통령이 지난 10년 동안 쌓아온 고도 성장 체제가 해체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었습니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전국에 비상 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국회를 해산하고 모든 정당과 정치 활동을 중지한 후 헌법을 고칠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유신헌법은 한 달 후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되었지요. 정부가 내세운 10월 유신의 대표적인 명분은, 당시 국가 체제로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 변화(월남패망, 미군철수)와 7·4남북공동성명으로 시작된 북한과의 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글 =황인희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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