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비혼족(非婚族)
드라마 속 가족상은 곧 우리 사회 가족관(觀)의 변천사다. ‘전원일기’가 3대 대가족의 수직구조라면 ‘한 지붕 세 가족’은 핵가족들의 수평구조다. 근래에는 시월드(父系)의 갈등이 주류지만 ‘왕가네 식구들’처럼 처월드(母系)도 부각되고 있다. 또 가족의 복원에 주목하는 드라마(‘아이가 다섯’)도 있다. 이런 드라마에선 결혼이라도 했지만 아예 결혼을 배제한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결혼 기피 경향은 선진국에선 이미 두드러진다. 미드 ‘섹스 & 더 시티’는 요약하면 독신 전성시대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4편에 이르러 좌충우돌 브리짓이 비혼모로 나타난다. 일본에도 ‘비혼가족’(2001), ‘비혼동맹’(2009) 같은 드라마가 있었다. 결혼제도의 세계적인 붕괴인가.

비혼(非婚)은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자발적 미혼이다. SNS 빅데이터 통계를 보면 ‘싱글 선언’이 5년 전보다 5~7배나 늘었다고 한다. 고부 갈등, 육아·교육 고민, 결혼 허례허식 등에서 탈피해 나만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가치관의 변화다.

당당한 비혼족은 새로운 소비주체로 주목받는다. 1인용 가구, 가전, 식재료가 쏟아진다. 작고 예쁜 차를 선호해 경차 판매가 20년 만에 준중형을 앞질렀다. 혼밥 혼술 혼영 시대를 주도하는 것도 이들이다. 2인 가구보다 소비성향이 훨씬 높다.

물론 솔로가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재롱떠는 아이, 함께 밥 먹을 식구(食口)가 없다. 그래서 아이 욕구는 조카에게 투영한다. 신생아가 줄어도 고급 유아동용품 시장이 호황인 이유다. 육아 프로그램과 먹방·쿡방도 대리만족 수단이다. 연애정보 사이트가 흔해 이성을 사귀기가 어렵지도 않다.

새 풍속도도 등장했다. ‘결혼 안 할 테니 내가 낸 축의금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10년간 결혼 안 하면 친구들이 위로금을 걷어주기도 한다. 혼자 웨딩드레스를 입고 찍는 셀프 웨딩촬영이 호황이다. 형광등 교체, 벌레 잡기, 변기 뚫기 등 생활서비스 업체까지 성업 중이다.

최근 통계청 조사 결과 ‘결혼은 해야 한다’는 응답이 2010년 64.7%에서 올해 51.9%로 뚝 떨어졌다. 이 응답률은 미혼 남성에서 42.9%, 미혼 여성은 31.0%에 불과했다. 결혼을 안 하니 저출산 대책도 백약이 무효다. 한때 싱글세 얘기까지 나왔지만 국내 세제는 이미 독신자에게 불리하다. 괴테는 “결혼만큼 자기 행복이 걸려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누군가는 결혼에서 행복을 찾지만 비혼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해체 시대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