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와 경제계가 여성의 사회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103만엔 벽’ 허물기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현행 연소득 103만엔(약 1100만원) 이하로 정한 배우자 특별공제의 연봉 상한을 올리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재계단체인 게이단렌도 통상 연봉이 103만엔 이하인 주부를 둔 근로자에게 주던 배우자 수당 폐지나 축소를 유도하기로 했다. 가정에 숨어 있는 여성을 일자리로 유도해 심각한 인력난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잠자는 여성인력 깨우려 '103만엔 벽' 깨는 일본
◆공제 연봉 상한 상향 조정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자민당 세제조사회는 이날 비공식 간부회의에서 배우자 공제를 적용하는 연봉의 상한을 올리기로 했다. 배우자 공제는 주부의 연수입이 103만엔 이하일 때 남편의 수입 중 38만엔을 공제받는 제도로, 연봉이 600만엔이면 세금 부담이 7만6000엔 정도 줄어든다.

일본 주부들은 남편의 세금 부담이 증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연수입이 103만엔 이하까지만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비정규직 주부의 60%가 연소득이 100만엔 미만이다. 재무성은 연봉 상한선으로 ‘130만엔’과 ‘150만엔’ 중 하나를 검토 중이며 조만간 구체적인 금액을 정할 예정이다.

자민당은 세수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배우자 특별공제 대상이 되는 남편의 연소득도 1320만엔이나 1120만엔 이하로 제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를 2017회계연도 세제 개편안에 반영해 내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게이단렌은 내년 1월 제시할 춘계 노사교섭을 위한 경영자 기본 방침에 배우자 수당에 관한 내용을 새롭게 넣기로 했다. 구체적인 대응은 각 기업 노사 협상에 맡기지만 배우자 수당 폐지나 축소를 적극 권유할 방침이다. 지난해 배우자 수당을 지급한 기업은 전체의 70%에 달했다. 이 중 58%가 지급 기준을 아내의 연소득 103만엔 이하로 정했다.

게이단렌은 남는 재원을 육아 세대 지원에 쓰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이미 배우자 수당을 없애기로 한 기업도 있다. 혼다는 내년 4월부터 배우자 수당을 폐지하는 대신 어린이 한 명당 지급액을 월 2만엔으로 늘리기로 했다.

◆1500만명 주부, 근로시간 연장 기대

일본 정부와 재계의 이 같은 움직임은 여성 인력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기 위해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것은 너무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기업들은 당장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지난 9월 일본의 구직자 한 명당 일자리 수인 유효구인배율은 1.38배로, 25년1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구직자 100명당 138개 일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이 급증하면서 여성이 많이 필요한 숙박과 음식, 서비스 분야의 구인난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배우자 공제를 도입한 1961년과 비교하면 가계 구조도 많이 바뀌었다. 1980년 1114만가구이던 전업주부 가구는 2014년 720만가구로 급감했다. 반면 맞벌이 가구는 이 기간 614만가구에서 1077만가구로 증가했다. 일본 정부는 720만 전업주부 가구를 의식해 배우자 공제를 폐지하는 안은 접었지만 ‘103만엔 벽’을 허물어 여성의 노동 참여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11년 노동부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혼 여성 가운데 약 3분의 1이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근무시간을 줄였다고 답했다. 배우자 공제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은 1500만명으로, 기준을 130만엔으로 올리면 이들의 근로시간만 최대 30%가량 늘어날 수 있다.

■ 103만엔의 벽

일본은 1961년부터 파트타임 가정주부의 연수입이 103만엔(약 1100만원)을 넘지 않으면 남편의 연봉과 무관하게 과세대상 소득에서 38만엔을 공제해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 같은 세제 혜택을 노리고 파트타임 주부들이 연봉 103만엔 이하까지만 일하려 하거나, 그 이상의 일자리를 찾지 않으면서 ‘103만엔의 벽’이란 용어가 생겨났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