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자랑스럽고 부끄러웠다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와 서울광장 등 곳곳에서 엄청난 사람과 촛불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시위 참가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그 기세가 두렵기까지 했다. 이미 거세진 물줄기는 역사의 큰 강물을 이룰 것이 분명하다.

남녀노소, 각계각층, 전국 각지에서 어느 한쪽 진영이라 특정할 수 없는 ‘모두’가 광장에, 길거리에 모였다. 이곳저곳이 공연장이었고 놀이터였다. 분노는 해학 및 풍자와 함께 있었다.

“박근혜를 해고한다.” 그렇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대통령을 고용했다. 그런데 그가 국민의 말을 안 들으면 내쫓겠다 이 말이지. 그렇다. 맞다. 정치권에서 쓰는 용어인 하야나 퇴진보다 훨씬 철학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2차 대국민 담화 내용을 성대모사로 패러디하는 한 초등학생을 봤다. “제가 여기 나와서 이런 얘기 하려고 초등학교 가서 말하기를 배웠나 자괴감이 들고”라고 능청을 떠는 귀엽고도 뼈 있는 모습에 모두가 크게 웃었다. 이 어린 학생은 어른들을 깨닫게 해줬다. “저 아이도 이 나라의 주권자고,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야당과 노조 등 특정 단체 주도의 집회는 전체 중에 일부에 불과했다. 시민들이 스스로 모여 뜻을 모으고 보여주며 다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주권자”라고 말이다.

시위 현장은 따뜻한 만남의 장이었다. 사람들은 그동안 각자 바삐 살다 보니 지나쳤던 정겨운 친구, 선후배들을 이곳에서 우연히 만났다. 각지에 흩어져 살던 형제자매, 친인척과 연락해 한자리에 모였다. 인근 식당들도 평소보다 장사가 잘됐다 한다. 그야말로 통합과 만남, 서민경제 활성화까지 일거에 이뤄냈다. 이 화합의 ‘일등공신’은 박 대통령인 것 같다.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사람들은 물리적 힘의 표출을 극도로 자제했다. “비폭력” “평화” “넘지 마”. 이 외침들은 그와 반대되는 폭력적 언어들을 압도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쓰레기를 봉투에, 심지어 길바닥에 떨어진 촛농까지 긁어 담았다. 우리 국민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하지만 “이게 나라냐”는 그 절규와 한숨 앞에선 국회의원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는데 이 지경까지 됐는가. 여러 곳에서 이른바 ‘비선 실세’들의 전횡이 포착되고 있지 않나.

야당은 그들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데 별로 유능하지도, 치열하지도 못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여겼음을 대오각성한다. “정치는 삼류, 국민은 일류”란 가차없는 채찍질을 겸허히 받는다.

이상민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smlee@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