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공약을 둘러싼 혼선이 커지고 있다. 이행 단계에서 상당폭 수정될 것이란 소식이 공화당은 물론이고 선거캠프 주변 인사들로부터도 광범위하게 들리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지, 중국 제품 45% 관세 부과,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오바마케어 등의 공약이 주요 수정 대상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트럼프는 엊그제 첫 TV 인터뷰에서 ‘보수적이고 강력한 공약을 고수할 것’이란 취지로 기자의 질문에 답하기도 했다. 선거불복 시위가 만만찮은 가운데 전해진 이런 혼란스런 메시지는 글로벌 시장으로도 전이되는 양상이다.

트럼프는 ‘나의 당선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공약들 간의 부정합성은 적지 않은 위협요인이다. 일관성이 없어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이야말로 최악의 정책이다. 이 같은 혼선들은 어느 정도는 예상됐던 상황이다. 정치판의 비주류인 트럼프가 유권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파격적인 공약을 선택한 측면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아웃사이더로 참여해 공화당을 ‘적대적으로 인수합병했다’는 해석이 나올 정도이니 불협화음은 당연한 일이다. 또 대선 과정에서 어느 정도 포퓰리즘적 성향을 보였던 것도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선거과정에서 급조된 공약이라면 그대로 밀고 나가기보다는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공약 수정 논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트럼프의 정책이 전통의 공화당 노선으로 점차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산 제품에 45%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은 와전된 것’이라는 캠프 관계자의 발언이 그런 고민을 잘 보여준다. NAFTA에 대해 폐기 대신 협상에 무게를 둔 발언이 이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호무역을 불사하겠다는 주장은 자유무역의 부정이라기보다는 자국이익의 극대화로 재해석돼야 한다는 말도 있다. 트럼프 공약의 수정은 크든 작든 취임시점까지 지그재그를 반복할 것이다. 트럼프는 공화당 주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공화당 지도자들도 당선자와 유권자들의 관심을 외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변화 속에서 한국의 이익을 최대한 관철해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트럼프의 생각과 행동을 오판하지 않고 잘 꿰뚫어봐야 한다. 트럼프는 당선자 연설에서부터 마치 딴사람이 된 듯 진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화당 주류 온건파인 라인스 프리버스 전국위원회 위원장을 비서실장으로 낙점하는 용의주도한 면모도 드러냈다. 트럼프의 시선이 공화당의 오랜 가치인 ‘감세’와 ‘작은 정부’로 향하는 것은 반가운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