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100만명(주최 측 추산)이 모인 서울 도심 3차 주말 촛불집회는 1·2차 때와 달리 자칫 ‘폭력 시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컸다. 과격시위로 악명 높은 노동·농민 단체가 대거 참가한 데다 법원이 청와대 근처까지 행진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불과 1㎞ 거리인 경복궁역 부근 내자동로터리는 평화 시위가 열린 광화문광장 일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경찰과 시위대가 장시간 대치하는 가운데 밤새 긴장감이 돌았다. 일부 과격 시위대가 청와대 쪽 행진을 막던 경찰관을 폭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집회 참가 시민들이 더 이상의 폭력이나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는 일을 제지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였다.

내자동로터리는 법원이 허용한 ‘집회 마지노선’이었다. 다섯 갈래로 서울 일대를 행진한 시위대는 오후 6시께 행진 경로의 종착점인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경찰은 일찌감치 차벽과 펜스를 치고 대기 중이었다. 주최 측이 마련한 트럭에 올라탄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가자 청와대로” “몰아내자 박근혜” 등의 구호를 외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분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격해졌다. 경찰과 최접점에서 대치한 일부 시민이 의무경찰의 방패를 빼앗기도 했다. 하지만 다수의 시민이 “경찰의 방패를 빼앗지 말라. 돌려보내라” “폭력은 쓰지 말라”고 소리쳤다. 일부 시민은 빼앗은 방패를 경찰 쪽으로 돌려보냈다.

밤 10시께 회색 점퍼를 입은 중년 남성이 경찰의 차벽 위로 올라가 경찰관을 밀치는 등 위험행동을 하자 많은 시민이 “비폭력”을 외쳤다. 11시께 일부 인원이 차벽 펜스를 넘자 시민들 사이에서 “평화시위” 구호가 터져 나왔다.

술에 취해 경찰관에게 욕설을 하는 중년 남성이 나타나자 대학생 강석현 씨(27)가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의 마음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주려면 시위대가 역풍을 맞을 빌미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설득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이 같은 평화시위 노력 덕분에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도심 촛불집회는 폭력 사태로 흐르지 않았다. 시민들의 자발적 평화시위는 강성투쟁을 해온 노동계의 시위 행태도 바꿔놨다. 김준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대변인은 “1987년 민주화투쟁 당시 파이프를 들고 시위에 참가했었지만 이번 집회를 보면서 진정한 시민의 힘은 비폭력 평화집회에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노동계 내부에도 폭력은 절대 경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마지혜/황정환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