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시대] 미국, TPP 포기…이해득실 셈법 분주한 통상당국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과 관련해 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 정부의 통상정책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미국과 일본 주도의 TPP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온 통상당국은 TPP 폐기에 따른 이해득실을 계산하며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한국은 그동안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중심으로 통상정책을 펴 왔다. 2014년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TPP 논의가 급물살을 탈 때도 TPP 참여보다는 한·중 FTA 등 개별 국가와의 협상에 힘썼다. 이 때문에 “메가 FTA(다자간 FTA)라는 시대 흐름에 한국만 뒤처지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공약대로 미국이 TPP 폐기 절차에 들어가면 한국으로선 커다란 고민을 덜 수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TPP가 다시 추진되더라도 한국으로선 전략을 짤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본이 ‘TPP 되살리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만큼 TPP의 완전 폐기를 단정짓기는 섣부르다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선 미국이 TPP 폐기보다는 자국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협상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TPP가 폐기되더라도 한국엔 또 다른 ‘악재’가 남아 있다. TPP 폐기가 한·미 FTA 재협상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발효가 안 된 TPP와 달리 한·미 FTA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발효 후 수년이 흘렀기 때문에 트럼프 당선자가 마음대로 폐기 수순을 밟진 못할 것”이라면서도 “미국에 유리하게 협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TPP가 폐기되면 중국 주도의 다자간 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주목을 받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한·중·일 3개국과 인도 호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RCEP는 그동안 TPP에 밀려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지 못했다. 일본이 중국에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요구하며 협상을 지연시킨 게 가장 큰 이유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TPP가 무산되면) 일본 정부가 RCEP 협상 타결에 나설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