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전 세계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1조달러에 달하는 인프라 투자가 경기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도 인플레이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그동안 초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초강세를 보인 채권시장이 가장 먼저 ‘트럼프노믹스’의 시험대에 오르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채권가격 급락

10일(현지시간) 뉴욕 채권시장에서 미 국채(10년물) 금리는 0.06%포인트 급등한 연 2.117%를 기록했다. 트럼프 당선과 동시에 지난 1월 이후 처음으로 연 2%를 돌파한 뒤 이날 추가 상승세가 이어졌다. 3일간 상승 폭이 0.30%포인트로 3년 만에 가장 가파른 오름세다.

단기금리의 지표가 되는 2년물 수익률도 0.012%포인트 상승한 연 0.90%까지 올랐다. 장기물인 30년 만기 국채수익률도 0.082%포인트 급등하며 연 2.92%까지 치솟았다. 지난 1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채권금리 상승은 가격 하락을 뜻한다.
[미국 트럼프 시대] 채권시장에 '트럼플레이션 공포'…미국 국채금리 2%대로 치솟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당선자의 경기부양책이 금리와 인플레이션율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했다”며 “트럼프노믹스에 채권시장이 가장 먼저 반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국채금리 상승은 유럽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다. 이날 독일 국채(분트) 10년물 금리는 연 0.27%를 기록해 지난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 국채(길트) 10년물 금리도 0.058%포인트 뛰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플레이션(Trumpflation)’ 리스크가 글로벌 채권시장을 뒤흔들고 있다고 표현했다. 트럼플레이션은 트럼프와 인플레이션을 섞은 합성어다.

FT는 트럼프가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쓰면 부채비율도 높아지겠지만 성장률과 물가상승률도 오를 것이라며, 이는 지난 30년간 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유지된 채권시장 랠리를 ‘시험에 들게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이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을 타개하기 위해 대규모 양적완화에 나서면서 채권이 최고의 투자상품으로 부상하던 강세장이 끝나가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분석도 나오고 있다. 월가의 채권전문가는 “트럼프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재정지출을 대폭 늘릴 것이라는 전망이 채권가격에 반영되고 있다”며 “트럼프의 당선만으로 인플레 심리에 불이 붙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시장 대전환기 예고

전문가 사이에서는 채권가격 하락과 대조적으로 증시가 활황을 보이면서 또 한 번의 ‘대전환기(great rotation)’를 맞이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는 글로벌 투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채권시장에서 빠져나와 위험자산인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뜻한다.

시장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우선 채권금리 인상 속도가 지나치게 가파르다는 부담이 있지만 모처럼 경기상승 모멘텀이 생기면서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가의 한 연기금 관계자는 “채권금리는 역사적으로 보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미국 중앙은행(Fed)도 어느 정도의 경기 과열과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 “대부분의 기관투자가는 채권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투매현상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장기채권 수요가 여전히 탄탄하다”고 덧붙였다.

아직 디플레이션 압박이 여전하다는 분석도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 합의에 실패할 경우 유가의 추가 하락이 예상된다. 일본과 영국,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은 여전히 막대한 규모의 채권을 사들이면서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어 금리 상승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