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대미 무역흑자 감축 딜레마 마주할 한국
한·중·일 3국 공히 예상외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소식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세 나라 모두 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보호무역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세계무역기구(WTO) 탈퇴까지 언급한 트럼프 당선자의 등장으로 한·중·일 3국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흑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기 전인 2011년 말 116억달러에서 작년 말 258억달러로 대폭 늘어났다. 이에 따라 트럼프 당선자는 한·미 FTA를 미국에서 1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앗아간 ‘일자리 킬러’라고 표현하면서 개정해야 한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국가 간 협약으로 발효된 FTA 조약을 개정하기는 쉽지 않다. 개정을 위해서는 양국 간 FTA 결과로 심각한 피해를 받는 산업부문을 실사해야 하는데 이것만 하더라도 1년이 넘게 소요된다. 이후 최소 세 번 이상의 실무회의를 거쳐야 한다. 양국 의회를 통과해야 하는 점 등을 감안하면 2년이란 세월을 훌쩍 넘길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미국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개정도 쉽지 않은 FTA를 손대기보다는 이를 지렛대로 활용,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라는 통상압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일반·슈퍼301조뿐만 아니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는 베넷-해치-카퍼(BHC)법안, 반(反)덤핑, 상계관세 등 통상압력에 동원할 다른 카드도 많기 때문에 한국의 근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연간 250억달러가 넘는 무역흑자를 줄일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미국산 무기구매 확대 등이 정부 차원에서 당장 추진할 수 있는 카드겠지만 한계가 있다. 나머지 부분은 반도체, 자동차 등 민간 차원의 구조적 흑자여서 이를 줄일 미시적 방법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결국 거시적으로 원화가치를 올리는 방법밖에 없다. 이는 세계에서 수출 의존도가 가장 높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한편 트럼프 당선자는 중국에도 통상압력을 가할 생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았는데도 연간 3000억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트럼프 당선자는 “중국이 무역흑자로 미국을 성폭행한다”고 막말까지 하며 45%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주장을 펴왔다. 이런 극단적인 관세정책은 시행하기 쉽지 않다. 중국의 보복관세가 뒤따르는 등 무역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서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지난 9일 케빈 라이 다이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중국 상품에 관세율 45%를 적용할 경우 중국의 대미 수출은 87%가량 줄어들 것이고 이로 인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단기적으로 2.6% 정도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관세율 15%를 적용해도 중국의 대미 수출은 31%가량 줄어들 것이며, 중국의 GDP는 단기적으로 1%가량, 장기적으로 1.8%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한국 대외 수출의 26%를 점하고 있는 대중국 수출은 70% 이상 중간재 형태의 수출로, 중국에서 가공된 후 최종적으로 미국으로 수출되는 구조라는 점이다. 따라서 미·중 간 무역전쟁이 본격화하면 한국 경제는 또 하나의 큰 충격을 받게 된다.

트럼프의 당선은 금융시장에도 큰 충격을 줬다. 그가 보인 ‘오락가락 행보’는 금융시장에 당분간 불안감을 던질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그는 재닛 옐런 미 중앙은행(Fed) 의장을 “저금리 정책으로 시장을 호도하고 있고 새 대통령이 금리를 인상토록 하는 등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며 2018년 임기만료 후 재지명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옐런 의장이 중도사퇴할 가능성이 커지고 이후 공화당 내 매파인 존 테일러 교수 등의 주장처럼 금리가 빠르게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하태형 <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