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애인에 대한 장벽 제거, 우리 모두를 위한 것
11월11일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날이다. 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이자 눈 건강을 챙기는 눈(目)의 날, 농업 진흥을 위해 정한 농업인의 날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은 막대 모양의 초콜릿 과자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보건복지부 장관인 내게는 한국지체장애인협회가 2001년부터 지정해 기념하고 있는 ‘지체장애인의 날’이 가장 뜻깊게 다가온다.

11월11일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숫자 1로 구성돼 있다. 지체장애인들이 신체장애를 이겨내고 스스로 걷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더불어 자기 자신을 첫 번째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국내 등록 장애인 수는 전체 국민의 약 5%인 250만명에 이르며, 그중 절반이 넘는 130만명이 지체장애인이다. 지체장애인이 사회활동을 할 때에는 이동의 자유를 제약하는 ‘물리적인 벽’과 다른 사람들의 차별 어린 시선에서 기인하는 ‘마음의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장애인에 대한 물리적인 벽을 허물고자 노력하고 있다. 장애인이 신체적 장애에 따른 제약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편의시설이 중요하다. 1997년에 제정된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내 건축물은 이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건축주는 비용 증가를 이유로 편의시설 설치를 회피하거나 건축물 용도를 무단 변경하기도 한다. 이런 행위는 편의시설 설치가 비장애인에게는 불편하다는 오해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애인 편의시설 중 장애인만 이용하도록 규정돼 있는 건 전용주차구역 하나밖에 없다. 다른 시설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이용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편의시설이 지하철 승강기다. 피곤하거나 짐이 많을 때 지하철에 설치된 승강기를 사용하고 싶지만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시설이라는 생각에 이용을 꺼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편의시설은 장애인이 사용하고자 할 때 먼저 양보한다면 얼마든지 이용해도 된다. 지하철 승강기는 장애인에게는 필수적 이동수단인 동시에 비장애인도 지하철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공동의 시설이다.

이렇듯 장애인을 위한 사회환경은 우리 모두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 사회를 발전시킨다. 1974년 국제장애인 생활환경 회의에서 제시된 ‘유니버설 디자인’, 즉 공용화 설계란 ‘모두를 위한 설계’를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편의시설 구축은 장애인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사회적 자산이다.

공용화 설계를 한다고 해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장애는 나와 관련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비장애인도 많다. 그런데 장애인 중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약 90%의 장애인은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는다. 그 누구도 장애가 나와 무관한 일이라 단정할 수 없다. 장애인에 대한 마음의 장벽을 걷어내고, 장애인 스스로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11일에 막대과자를 나누는 것과 더불어, 장애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도 계속돼 우리 사회에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자라나기를 기대한다.

정진엽 < 보건복지부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