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역전 드라마’는 숨어 있던 트럼프 지지자들이 썼다. 대체로 시골에 살수록, 기독교 신자일수록, 기혼인 백인 저학력 남성일수록 트럼프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오후 7시(미국 동부표준시 기준) 속속 개표가 이뤄지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이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 CNN 등이 공동으로 에디슨리서치와 함께 진행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가 트럼프에게 등을 돌릴 것이라는 클린턴 지지자들의 기대와 달리, 공화당 지지자의 90%가 트럼프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
[미국의 선택 트럼프] 저학력 백인 남성 '숨은표' 결집…히스패닉·아시아인도 '변심'
민주당 지지자의 89%는 클린턴을 찍었지만, 트럼프를 찍은 이(9%)의 비중도 작지 않았다. 공화당 지지자로 클린턴을 찍은 이(7%)의 비중보다 높았다. 클린턴으로 전향한 공화당원은 생각보다 적고, 오히려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트럼프에 동화된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다.

트럼프에겐 백인 남성의 강고한 지지가 큰 기반이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2008년과 비교했을 때 공화당 후보에게 투표한 백인(55%→58%)과 남성(48%→53%)의 비중이 높아졌다. 2008년에는 흑인 후보라는 상징성 때문에 흑인 투표자의 95%가 압도적으로 민주당에 몰표를 줬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그 비중이 88%로 떨어졌다. 트럼프를 찍은 흑인 유권자 비중은 8%였다.

백인 가운데서도 고졸 이하 저학력자에게 트럼프는 압도적인 인기(67% 지지율)를 누렸다. 유색인종 저학력자 가운데 75%가 클린턴을 지지하고, 트럼프를 지지한 비중이 20%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백인 저학력 남성의 박탈감을 자극했다는 점이 선거 결과에서 또렷이 부각됐다.

히스패닉과 아시아인 가운데 지난 4년 사이 공화당으로 전향한 사람이 늘어난 것도 변수였다.

인구 구성으로 보면 클린턴이 우세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었다. 미국 인구 가운데 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한 유색인종 비중이 4년 전 28%에서 30%까지 늘어났다. 히스패닉 비중은 2012년 10%에서 올해 11%로 높아졌다.

그렇지만 이들이 그만큼 더 민주당에 기울지는 않았다. 히스패닉과 아시아인의 민주당 지지율은 4년 전에 비해 각각 6%포인트(71%→65%), 8%포인트(73%→65%) 떨어진 반면 공화당 지지율은 2%포인트, 3%포인트씩 올라갔다. 비주류인 유색인종 가운데서도 ‘매력 없는’ 클린턴에게 등을 돌린 이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도농 간 격차도 컸다. 5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도시지역 거주자 중 트럼프 지지자는 35%인 데 비해 교외에 사는 이들은 50%, 소도시 및 농촌 거주자는 62%가 트럼프를 찍었다. 도시에 사는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위세를 부리는 세상에 일격을 날린 셈이다.

이민자 문제가 중요하다고 여기고(64%), 가족의 재무상황이 전보다 나빠졌다고 생각하며(78%), 다른 나라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고 여기는(65%) 이들에게서 트럼프가 표를 얻었다.

그동안 주류 사회에서 목소리를 잃어버렸던 숨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박빙의 경합지역에서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주류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은 모두 체면을 잃게 됐다.

개표 직후만 해도 클린턴의 힘든 승리 정도를 예측했던 기관들은 불과 2시간여 만에 예측이 모두 빗나가는 것으로 나오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확한 예측으로 명성을 날렸던 파이브서티에잇닷컴은 개표 시작 당시 클린턴 당선 확률을 73%, 트럼프 당선 확률을 27%로 내다봤지만 약 5시간 뒤 이 확률은 21% 대 77%(당선자가 나오지 않을 확률 2%)로 뒤집혔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