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 최순실 씨(60)의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9일 한국관광공사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GKL은 최씨가 장애인 펜싱팀을 창단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이권을 챙긴 것으로 알려진 회사다. 전날 중국에서 귀국하자마자 인천공항에서 긴급 체포된 광고감독 차은택 씨와 최씨 등 비선 실세들이 GKL 포스코 KT 등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전·현 공기업을 ‘타깃’으로 잡은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이날 서울 삼성동 GKL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의혹 관련 서류와 관련자 휴대폰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GKL이 지난해부터 운영한 장애인 펜싱팀 운영 자료를 집중 수색해 압수했다. 최씨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구속)과 문화체육관광부 등을 동원해 GKL이 장애인 펜싱팀을 창단하도록 압력을 넣고, 창단 과정을 자신이 소유한 더블루케이가 대행하도록 해 이권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최씨는 외국인 카지노 세븐럭을 운영하는 공기업 GKL의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의 최측근 고영태 씨는 “GKL 사장을 날려버리겠다”고 자주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고 세븐럭을 통해 환전 수수료 등을 챙긴 의혹도 받고 있다. GKL이 창단한 펜싱팀 감독 박모씨는 고씨의 고교 선배다.


포스코와 KT도 비선 실세들의 ‘먹잇감’이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최씨가 설립·운영을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49억원을 낸 포스코는 차씨의 ‘광고회사 강탈 시도’ 의혹과 연결돼 있다. 차씨는 포스코가 ‘알짜’ 광고계열사 포레카를 컴투게더에 넘기자 안 전 수석과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을 동원해 “지분 80%를 넘기지 않으면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컴투게더 대표를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이에 응하지 않자 포스코는 광고 물량을 대폭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본은 포스코 관계자를 대상으로 실제 광고 물량을 줄였는지, 줄였다면 배경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있다. 특수본은 이날 차씨를 소환해 이 같은 의혹을 강도 높게 조사하고 송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청구했다.

KT는 차씨가 소유했거나 실소유한 것으로 의심되는 회사에 광고를 몰아준 의혹을 받고 있다. KT가 지난 2월부터 9월까지 발주한 영상광고 24편 중 6편은 차씨 소유인 아프리카픽처스가, 5편은 차씨 측근이 대표로 있는 플레이그라운드가 맡았다. 차씨는 20년 지인인 이동수 씨를 KT통합마케팅본부장(전무)으로 앉히기 위해 안 전 수석을 동원해 황창규 KT 회장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인사 개입’ 의혹도 받고 있다. 안 전 수석은 지난해 초 황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씨를 강력 추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선 비선 실세들이 전·현 공기업을 타깃으로 삼은 이유로 최고경영자(CEO) 선임을 사실상 정부가 좌우한다는 점, 정부 지원 여부가 경영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점 등을 꼽았다. 포스코와 KT는 민영화됐지만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다. 두 그룹 CEO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부분 불명예 퇴진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과 황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 말 끝난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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