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승인안의 조기 의회 비준을 추진 중인 일본에 비상이 걸렸다. 일본 정부는 미국 차기 정부의 TPP 재협상 요구를 사전에 차단하고 미국의 조기 비준을 압박하기 위해 의회 승인을 서두르고 있었다.

일본 중의원은 지난 4일 특별위원회에서 TPP 승인안 및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이번주 본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었다. 9일 자민·공명 등 연립여당의 간사장과 국회대책위원장은 “TPP 승인안과 관련 법안을 가급적 빨리 본회의에서 표결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10일 표결에 나서기로 했다. TPP 승인안이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해 참의원에 송부되면 30일 뒤에는 참의원에서 의결하지 않아도 자동 승인된다. 일본 정부여당은 임시국회 회기를 연장해 다음달 10일께 비준 절차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이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11월 TPP 관련 정상회의에서 미국을 포함한 12개국 정상이 조기 발효 목표를 확인했다”며 “오바마 대통령도 올해 안에 국회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면서 TPP가 자초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10월 TPP 타결 직후 “TPP는 끔찍한 거래”라고 혹평했다. 선거 유세 과정에서도 “대선에서 승리해 집권하면 취임 첫날 TPP를 철회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TPP는 12개 참여국 간 공산품과 농림수산품 등 95%의 품목에 관세를 철폐하고 지식재산권 보호, 투자 관련 분쟁 해결 등 무역과 투자 등 다양한 분야의 규칙을 담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기존에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이 미국 내 일자리 감소와 제조업의 해외 유출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전면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TPP뿐 아니라 미국 정부의 대일·아시아 정책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트럼프는 유세 과정에서 일본의 핵무장 용인론과 일본 측의 주일미군 주둔비 부담 확충 등을 강조했다. 다만 일본 정부는 트럼프 당선자의 외교·안보 자문역인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DNI) 국장이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트럼프가 당선돼도 미·일 관계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희망을 걸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뒤 “신속하게 새(트럼프) 정권과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가와이 가쓰유키 총리보좌관에게 다음주 미국을 방문하도록 지시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