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에스피지 회장(왼쪽)이 정밀 제어용 기어드 모터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안재광 기자
이준호 에스피지 회장(왼쪽)이 정밀 제어용 기어드 모터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안재광 기자
소형 정밀 모터를 생산하는 에스피지의 이준호 회장(56)이 관계사 성신을 흡수 합병하기로 한 것은 작년 말이었다.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다. 두 회사 매출을 합치면 2000억원을 껑충 넘어 중견기업이 된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남들은 회사를 일부러 쪼개면서까지 중소기업으로 남으려 하는데 왜 반대로 가느냐”는 것이었다. 중소기업 때 받던 기술 개발, 세제 혜택 등 100여개 지원을 제발로 걷어차는 셈이니 나올 법한 지적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주저하지 않았다. 규모를 키워야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할 수 있다고 봤다. 지난달 주주총회를 열어 합병안을 통과시켰다. 그는 “5년 뒤에는 매출이 지금의 두 배 수준인 5000억원을 넘길 것”이라고 자신했다.

◆“합병으로 설비투자 여력 생겨”

M&A로 '체급'올린 에스피지 "일본 니덱과 경쟁"
에스피지가 규모를 키워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 니덱(日本電産)과의 경쟁 때문이다. 니덱은 지난해 매출 1조1782억엔(약 13조원)을 거둔 모터업계의 ‘골리앗’이다. 매년 인수합병(M&A)을 통해 세계 모터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이 회장은 “니덱과 제대로 맞붙기 위해선 체급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에스피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라인과 공장자동화(FA) 분야에 많이 쓰이는 정밀 제어용 기어드 모터에, 성신은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에 들어가는 교류(AC)모터에 강점이 있다. 제품군과 고객사를 공유하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합병 후 설비투자도 계획 중이다. 주문량을 맞추기 버거울 정도로 라인을 100% 가동하고 있어서다. 이 회장은 “회사 규모가 작으면 대규모 투자 후 주문량이 줄었을 때 고정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며 “합병으로 규모가 커지면 고정비 부담이 낮아져 투자 여력이 더 생긴다”고 설명했다.

합병은 ‘고향 기업’에 돌아간다는 의미도 있다. 합병 대상인 성신은 그의 부친(이해종 회장)이 1973년 설립한 회사다. 이 회장이 성신에 근무하다 1991년 독립해 창업한 회사가 에스피지다. 에스피지는 지난해 매출 1388억원을 거둬 성신(1249억원)을 넘어섰다.

◆美·中 등에서 신규 수주 잇달아

에스피지는 올 들어 해외시장에서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 코카콜라 자판기의 얼음분쇄기 모터를 수주했고 글로벌 공작기계업체 HAAS에도 모터를 처음 공급했다. 성신 또한 미국 가전업체 GE의 식기세척기에 들어가는 펌프를 최근 처음 납품했다.

중국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고속철의 개폐장치용 모터 공급을 지난 4월 시작했다. 중국 지하철에 들어가는 도어 모터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

시뮬레이터나 4차원(4D) 영화관의 움직이는 의자에 쓰이는 유성감속기 부문도 기대하는 시장이다. 국내 한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과 손잡고 4D 의자 수천대를 제작했다. 가전 완제품 시장에도 진출했다. 성신을 통해 음식물처리기 전문기업인 스마트카라 지분 56%를 3월 확보했다. 시중에 나온 음식물처리기 중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 남동산업단지=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