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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스파고의 교차판매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입력 2016-11-08 11:51:50 | 수정 2016-11-08 12: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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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텀프 전 웰스파고 회장을 만난 건 2008년 7월이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불과 2개월 전이었다. ‘은행의 미래’라는 거창한 제목의 시리즈 기획기사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샌프란시스코 본사의 집무실은 소박했다. 집기와 카펫트는 낡았고, 면적도 3평(약 10㎡) 남짓에 불과했다. 그는 미국의 금융권력을 상징하는 월스트리트의 ‘이단아’로 불렸다. 당시 월가가 금융공학을 앞세워 파생상품 개발과 판매에 몰두하고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울 때도 웰스파고는 반대로 움직였다.

당시 스텀프 회장은 1시간 남짓한 인터뷰 동안 ‘웰스파고 웨이’를 강조했다. 그는 “금융산업의 유행에는 관심이 없으며 몸집을 부풀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월가를 혹평했다. 또 “클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을수록 커진다”며 “은행의 크기보다는 고객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좋을수록 커진다…기본에 충실한 영업전략

웰스파고를 상징하는 단어는 ‘교차판매(cross-selling)’다. 같은 고객에게 다양한 은행상품을 판매하는 영업전략이다. 웰스파고는 모기지 대출이자를 낮게 제공하는 대신 펀드와 신용카드, 보험 등 자사의 다른 금융상품을 판매하면서 수익기반을 넓혔다. 교차판매를 기본 비즈니스 모델로 내세워 미국서 소매영업에 가장 강점을 가진 은행으로 성장했다.

2008년 당시 웰스파고 본점에서 북쪽으로 20여㎞ 떨어진 노스비치 지점을 방문했을 때 직원들은 자신들이 근무하는 은행을 ‘가게(store)’라고 불렀다. ‘돈놀이’를 하는 곳이 아니라 고객이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 직원은 “우리는 모기지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집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또 “펀드를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노후를 보장하고 자녀교육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권유’한다”고 강조했다.

이 지점은 토요일에도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문을 열었다. 인근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고객을 돕기 위해서라고 했다. 웰스파고는 슈퍼마켓내 매장도 미국서 가장 많은 530개에 달할 정도로 지역사회 맞춤형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다. 가게를 열려는 고객에게 대출상담은 물론 상권을 분석해주고 가게를 연 뒤에는 잔돈 교환부터 세금정산, 직원의 사회보험료 납부까지 완벽한 재무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CLSA의 마이크 마요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웰스파고는 성공적인 교차판매 전략을 통해 ‘은행의 월마트’로 변신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최대 오프라인 소매체인인 월마트처럼 모든 금융상품을 판매하면서 고객당 수익률이 가장 높은 금융회사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독’으로 변질된 교차판매 만능주의

미국 기업을 통틀어 지난 2분기까지 14분기 연속 50억달러의 순이익을 낸 기업은 애플과 웰스파고 단 2곳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웰스파고는 금융위기 이후 JP모건을 제치고 시가총액 1위 은행으로 올라섰다. 월가가 ‘주류’로 인정하지 않던 미 서부 지역의 소매중심 은행이 미국을 대표하는 금융회사가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스텀프 회장이 취임하던 2005년 8월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당시 스텀프 회장은 교차판매의 목표를 ‘8’로 늘렸다. 고객 한 명에게 팔아야 할 금융상품 갯수를 8개로 올린 것이다. 그는 “이 목표가 은행을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고 은행은 8이라는 숫자와 ‘위대하다’는 단어를 결합시켜 ‘Going for Gr-Eight’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2012년 웰스파고는 은행의 비전을 담은 책자를 제작하면서 ‘8’이라는 목표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책자는 ‘지금 고객이 보유한 웰스파고 금융상품의 평균 갯수는 6개지만 앞으로 8개, 혹은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자’고 독려했다.

하지만 웰스파고의 교차판매 실적은 한계에 부딪혔다. 2013년 고객 한 명당 평균 6.36개였던 교차판매 비율은 지난해 말 6.29개로 떨어졌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할당된 목표는 줄어들지 않았다. 매출도 2011년 860억달러를 기록한 뒤 수년간 정체상태였다. 제로금리에 가까운 초저금리와 더딘 경기회복이라는 외부 악재의 영향도 컸다.

웰스파고가 그나마 수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미국 전역에 깔린 막강한 영업망의 역할이 컸다. 씨티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비용절감과 수익개선을 위해 지점을 줄일 때도 웰스파고는 39개주에 걸쳐 6100개가 넘는 지점망을 두면서 거점을 확충했다. 미국 가구의 절반은 2마일 내에 웰스파고 지점이나 ATM기기를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웰스파고가 오프라인 거점에 집착한 이유는 이를 통한 거래계좌의 확대가 수익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1분기 웰스파고의 예금서비스 수수료 수입은 12억5000만달러로 은행 수익의 10%를 넘게 차지했다.

◆무리한 실적주의에 실종된 직업윤리

교차판매의 부작용은 현장에서 살인적인 업무강도로 나타났다. 노스비치지점의 경우 5명의 은행원과 6명의 출납직원 등 11명이 근무했지만 매월 700개의 신규계좌를 개설하고 있었다. 미국의 통장개설은 한국보다 훨씬 까다롭다. 본인 동의를 거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 소득과 일정점수 이상 신용점수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런 조건 하에서 은행원 한 명당 매달 100개가 넘는 신규 계좌를 유치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웰스파고는 각 지점별로 오전 9시 영업개시 전에 각 직원별로 활동계획을 점검한다. 전날 얼마나 많은 고객을 만났는지, 오늘 예정된 고객 면담 계획을 확인하는 자리다. 오후에는 오전 실적을 다시 평가한 뒤 독려한다.

영업 성과는 곧바로 돈과 직결됐다. 웰스파고에서는 1인당 상품 판매수와 수익, 교차판매 실적 등 개인 성과를 바탕으로 지점당 순위가 월 단위로 이뤄진다. 각 지점별로 매주 통보하는 서비스 점검 결과는 지점의 예산과 성과급에 그대로 반영된다.

교차판매는 ‘끼워팔기’와 동전의 양면이었다. 판매 실적이 성과급과 인사평가와 연계되면서 웰스파고의 고객우선 가치는 ‘실적지상주의’로 변질됐고, 살인적인 업무강도는 직업윤리마저 마비시켰다.

일선 영업현장에서 택한 방법은 편법과 불법이었다. 직원들은 고객에게 현금카드를 발급하면서 다른 금융서비스를 받는데 동의한 것으로 서류를 조작했고, 특정 금융상품은 다른 상품과 패키지로만 구매할 수 있다고 속였다. 많은 고객들이 실적 채우기에 급급한 직원들의 강매로 계좌를 개설했지만 “잔액이 30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월 5달러의 계좌유지 수수료가 나간다”는 설명은 듣지못했다.

이런 식으로 본인 동의를 받지 않고 계설된 ‘유령계좌’ 수는 200만개가 넘었고 허위로 발급된 신용카드도 56만장에 달했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연방방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지난 9월 웰스파고에 1억85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웰스파고도 관련 직원 5300명을 해고했지만 사태는 여기서 일단락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주 검찰은 지난 5일 웰스파고 본사에 수색영장을 제시하고 허위로 개설된 계좌나 신용카드, 보험 등 금융상품 내용과 고객 정보를 요구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무너진 웰스파고 신화…CEO 불명예 사퇴

스텀프 회장은 CFPB로부터 벌금을 부과받은 뒤 한 달 만에 물러났다. 즉각적인 사퇴였고 올해 지급했던 성과급 4100만달러도 회수당했다. 미 상원 금융위원회는 스텀프 회장을 불러 청문회를 열었고 그의 사임을 압박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한 때 “웰스파고를 통째로 사고 싶다”며 극찬을 보냈지만 ‘유령계좌’ 파문 이후 “스텀프 회장이 사태의 심각성을 너무 늦게 인지했다”며 그를 외면했다.

월가의 투자은행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며 승승장구한 ‘웰스파고의 신화’가 무너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미국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중 하나로 통하는 3M의 신학철 수석부회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실적지상주의는 필연적으로 부실과 직업윤리 파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서 디젤차 점유율을 30%로 올린다는 목표를 맞추기 위해 무리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배기가스 조작과 같은 비윤리적인 방법을 쓰게 된 폭스바겐을 사례로 들었다.

문제는 결국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 귀착됐다. 스텀프 회장은 FT와 인터뷰에서 자신은 더 이상 교차판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고객가치라는 표현을 더 즐긴다”고 강조했지만 일선 지점의 고객들은 웰스파고가 ‘돈 버는 기계’가 됐다며 고개를 돌렸다.

웰스파고의 영업전략은 단순하면서 가장 ‘업(業)’의 기본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것은 고객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씨티와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등 월가를 대표하는 금융회사들이 휘청거릴 때 웰스파고가 눈부신 성장을 이룬 요인도 여기에 있다.

월가의 한 금융전문가는 “웰스파고는 이제 벤치마킹 대상이 아니라 업(業)의 본질을 잃어버릴 경우 어떤 사태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가 됐다”고 지적했다.

뉴욕=이심기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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