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분 회동 > 박근혜 대통령은 8일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오른쪽)에게 “국회에서 추천해주는 총리를 임명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13분 회동 > 박근혜 대통령은 8일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오른쪽)에게 “국회에서 추천해주는 총리를 임명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박근혜 대통령이 8일 ‘김병준 총리 카드’를 사실상 접었다. 야권이 요구한 ‘국회 추천 총리’를 전격 수용했다. 야당과 사전 협의 없이 불쑥 내놓은 김병준 총리 후보 지명으로는 정국 혼란을 수습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 씨 국정개입 파문’ 이후 리더십에 크게 상처를 입은 만큼 야당의 요구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상황 인식이 작용했다.

◆“야당 요구 거부하기 어려워”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김병준 총리 카드를 제시하며 “헌법상 상당한 권한을 총리에게 넘기겠다”고 말했다. 야당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7일 여야 영수회담 제안으로 돌파구를 찾았지만 퇴짜를 맞았다.

그날 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이 내일 오전 국회에 가실 테니 만나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청와대는 다급했다. 오는 12일 전국적인 민중총궐기 시위가 예고됐고, 하야·탄핵 목소리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국정을 빨리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그래서 김병준 카드를 사실상 접고 야당 요구를 모두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정 의장과의 면담에서 경제위기를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박 대통령은 정 의장에게 국회가 총리 후보를 추천해달라고 한 뒤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여전히 어렵다. 수출 부진이 계속되고 또 내부적으로는 조선 해운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어려운 여건을 극복해서 경제를 살리고 또 서민생활이 안정될 수 있도록 여여가 힘을 모으고 국회가 적극 나서주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야당에 공 넘기고 시간 벌기?”

박 대통령이 야당 요구대로 ‘국회 추천 총리’를 수용함으로써 정국 수습의 해결책을 일단 정치권으로 넘길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여야뿐만 아니라 야3당 간에도 최순실 씨 사태의 정치적 셈범에 차이가 있다. 여야의 유력 대선 후보들도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하야·탄핵’ ‘거국내각 구성’ 등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

정치 전문가들은 “지금 정국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 후보자를 추천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게 분명하다”며 “박 대통령이 내각 개편 문제를 정치권에 맡겨둠으로써 그만큼 정국 대응을 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 실장은 이날 박 대통령과 정 의장의 면담에 배석해 “여야 대표와 상의해서 총리 후보를 추천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허원제 정무수석도 “무엇보다 국정 안정을 위해 총리 후보를 빨리 추천해달라”고 거들었다. 정치권을 압박하는 모양새로 비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김 총리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를 선언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가 새 후보자를 추천할 때까지 김 후보자의 자격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총리추천 권한을 정치권에 넘겨준 만큼 앞으로 민심 동향을 살피면서 추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