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22일까지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내년 1월22일까지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아름다운 서정시를 남긴 시인 백석(1912~1996)의 삶이 무대에서 되살아난다. 내년 1월22일까지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오는 30일부터 서울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공연하는 연극 ‘백석우화-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에서다. 두 작품은 맑고 서정적인 시어를 남기고 굴곡진 현대사 앞에 스러져 간 백석의 삶을 담담하게 그린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백석과 기생 자야(子夜)의 사랑 이야기를 90여분 동안 담백하게 이어간다. 자야는 50여년 전 잠시 함께 살다 만주로 떠난 옛 연인 백석을 환상 속에서 되살린다. 두 사람은 모호한 시공간 속에서 오랜 기다림과 사무치는 정한을 노래한다. 텅 빈 무대는 어느새 따뜻한 그 시절로 돌아간다.

자야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노래할 땐 흰 눈이 갈매나무 위로 흩날리는 듯하다. ‘여우난 곬족’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등 백석의 서정시가 피아노 반주와 함께 애절하고 서정적인 가락이 돼 흐른다. 박해림이 대본을 쓰고, 채한울이 곡을 지었다. 대학로 재주꾼 오세혁이 연출을 맡았다. 강필석, 오종혁, 이상이 백석 역, 정인지와 최연우가 자야 역을 번갈아 맡는다. 전석 5만5000원.

연희단거리패의 ‘백석우화’는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해방 이후 백석의 삶까지 집중적으로 조명한 기록극이다. 월북시인으로 분류된 그의 작품은 남쪽에서 출판 금지 대상이 됐지만, 북쪽에서도 그는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시대는 단지 시를 쓰고 싶었던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해방 이후 북한에 남은 백석은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번역극과 아동문학에 몰두한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글이 공산주의 사상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그를 삼수갑산 집단농장으로 유배를 보낸다.

극본을 쓰고 연출한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여우난 곬족’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의 시를 엮은 대본에 백석의 삶을 입힌다. 아름다운 시어들은 소리꾼 이자람이 작창한 판소리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해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연극이다. 백석 역을 맡은 배우 오동식은 연기상을 수상했다. 이번 공연에서도 자야를 그리워하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읊고, 광기 어린 눈빛으로 대남방송에 출연해 ‘붓을 총, 창으로!’라고 울부짖는 백석의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다. 전석 3만원. 다음달 18일까지.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