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리는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전에 전시된 백남준의 ‘율곡’(왼쪽)과 최북의 ‘호계삼소’. 연합뉴스
서울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리는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전에 전시된 백남준의 ‘율곡’(왼쪽)과 최북의 ‘호계삼소’. 연합뉴스
사람 키만한 나무 코끼리가 우산을 쓴 돌부처를 태우고 수레를 끌고 있다. 수레에는 TV모니터와 축음기 등이 가득 실려 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모든 사람이 정보를 향유하는 현대의 모습을 표현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다. 그 옆에는 조선시대 남종화의 대가였던 현재 심사정의 ‘촉잔도권(蜀棧圖圈)’이 걸려 있다. 지금의 쓰촨성 일대인 중국 촉나라로 가는 첩첩산중 험난한 길을 그린 작품으로, 인생 역경을 상징하기도 한다. 인간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백남준의 작품과 현재의 그림을 통해 “역경을 이겨내면 결국에는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조선시대 회화와 현대의 설치미술인 비디오아트를 조화시킨 전시회가 마련된다. 9일부터 내년 2월5일까지 서울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리는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문화로 세상을 바꾸다’ 전시회.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백남준아트센터가 협력해 공동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연담 김명국, 현재 심사정, 호생관 최북, 오원 장승업 등이 그린 조선시대 산수화와 인물화 등 25점과 함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28점이 출품됐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조선 회화와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나름의 공통분모를 찾아 연관성이 있는 작품끼리 연결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로 앞에 백남준의 작품 ‘비디오 샹들리에 1번’이 보이고 그 옆에 장승업의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가 있다. 이들 작품을 연결하는 키워드는 ‘풍요’다. 백남준은 부유함의 상징인 샹들리에에 현대 대중의 소일거리인 TV를 매달았다. ‘모든 사람이 풍요롭게 사는 시대에 대한 기대’로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장승업의 기명절지도에는 연뿌리, 물고기, 수선화 등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각각 자손번창, 장원급제, 신선 같은 삶을 뜻한다.

백남준의 ‘TV부처’와 최북의 ‘관수삼매(觀水三昧)’를 한데 묶은 것도 흥미롭다. ‘TV부처’는 돌부처를 비디오 카메라가 찍어서 TV에 내보내고, 이 TV를 그 돌부처가 보고 있는 작품이다. 관객 모두가 부처이며 누구든 스스로를 응시하고 집중할 때 깨달음이 다가온다는 의미다. ‘관수삼매’에서는 한 스님이 가부좌한 채 물가를 바라보고 있다. 김지희 백남준아트센터 책임큐레이터는 “우리 인식이 성찰의 계기를 거쳐 성숙해가는 모습을 잘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비디오아트가 기술 발달에 힘입어 어떻게 변해가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간송콜렉션과 백남준의 작품을 제외한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구범석 작가의 ‘보화각(華閣)’이 전시장에 설치돼 있다. 가상현실(VR)을 통해 산수화에 나오는 무릉도원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게 한 작품이다. 삼성전자 휴대폰 ‘갤럭시S7엣지’를 활용한 VR기기를 머리에 쓰면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를 따라 12개의 산수화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의 작품 ‘금강내산’ 속으로 들어가면 날이 저물어 첩첩산중에 숨어 있는 초가집에 불이 켜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김 큐레이터는 “일정한 기준으로 작품들을 묶긴 했지만 관람객이 특정 방향으로 감상하도록 방향을 의도하지는 않았다”며 “전시의 맥락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전적으로 관람객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전통문화와 현대문화를 접목시키는 작업을 통해 우리 문화의 주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게 최근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이라며 “이상향에 대한 열망을 담은 작품들을 통해 혼란한 현대시대에 대중에게 위안을 주고자 하는 뜻도 있다”고 설명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