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을 사실상 무혐의 처리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클린턴의 아킬레스건인 이메일 스캔들을 재수사하겠다고 발표한 지 9일 만이다. 선거(8일)를 이틀 앞두고서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6일(현지시간) 하원 정부개혁감독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새로 확보한 클린턴 후보 관련 이메일을 조사한 뒤 지난 7월 내린 결정(불기소 권고)을 바꾸지 않았다”고 밝혔다.
FBI, 클린턴에 '이메일 면죄부'…트럼프는 뒤집기 '비상'
이메일 스캔들은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업무용 이메일을 국무부 서버가 아니라 개인용 서버를 사용해 주고받은 사건이다. 그는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했다는 혐의로 1년 가까이 조사받았으나 7월 초 불기소 권고 처분을 받았다. 최근 측근의 컴퓨터에서 추가로 관련 이메일이 발견돼 다시 조사를 받았다.

지난달 이메일 재수사 발표 충격으로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13개 주요 경합지(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뉴햄프셔 등) 지지율은 오차범위(±4%포인트) 내인 2~4%포인트 차이로 좁혀졌다. 워싱턴포스트(WP)와 CNN 등 미 주요 언론은 이를 계기로 트럼프가 승리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내놨다.

이날 FBI가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을 사실상 무혐의 처리하겠다고 한 방침은 지난달 28일의 재수사 방침 발표 때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WP는 “코미 국장이 재수사 발표 후 클린턴 캠프와 민주당·백악관으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느꼈을 것”으로 보도했다.

이번 발표로 판세는 다시 적잖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은 “클린턴 후보 앞길에 끼어 있던 먹구름이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다만 클린턴 캠프 일각에서는 FBI의 재수사 발표로 클린턴이 이미 신뢰성에 타격을 받을 대로 받은 데다 자칫 충분한 배경 설명 없이 나온 ‘면죄부’ 발표가 트럼프 지지층을 자극해 더 결집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트럼프는 5개 경합주를 도는 판세 뒤집기 강행군에 나섰다. 그는 FBI 결정 소식을 듣고 “클린턴은 왜곡된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대선에 나서선 안 된다”며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월가는 클린턴에 대한 FBI의 면죄부 결정을 투자 호재로 받아들였다. 7일 개장한 뉴욕 증시에서 3대 지수인 다우존스지수, S&P500지수, 나스닥지수는 전주말보다 각각 1% 이상 오르며 출발했다. 트럼프 당선은 불확실성을 키워 시장에 블랙스완(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발생해 엄청난 충격을 주는 현상)급 충격을 줄 것으로 우려됐으나 FBI의 면죄부로 월가가 크게 안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지지율과 반대로 움직이는 멕시코 페소화 가치는 2% 가까이 급등하며 달러당 18.69페소까지 치솟았다. FBI가 이메일 재수사 방침을 발표하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투자자 대부분이 클린턴 후보의 당선과 함께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박수진/뉴욕=이심기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