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난 민심 앞에 놓인 ‘朴대통령 운명’은… > 20만여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4만5000여명)이 든 ‘촛불’이 지난 5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를 뒤덮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도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족과 함께, 연인의 손을 잡고 집회에 나온 시민들은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상 규명과 박 대통령 퇴진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한경닷컴 뉴스랩의 실험적 뉴스 브랜드 뉴스래빗의 공식 페이스북(facebook.com/newslabit)에서 집회 현장을 360도로 촬영한 가상현실(VR) 사진을 볼 수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성난 민심 앞에 놓인 ‘朴대통령 운명’은… > 20만여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4만5000여명)이 든 ‘촛불’이 지난 5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를 뒤덮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도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족과 함께, 연인의 손을 잡고 집회에 나온 시민들은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상 규명과 박 대통령 퇴진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한경닷컴 뉴스랩의 실험적 뉴스 브랜드 뉴스래빗의 공식 페이스북(facebook.com/newslabit)에서 집회 현장을 360도로 촬영한 가상현실(VR) 사진을 볼 수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로 정국이 수습되기는커녕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성난 민심에 청와대, 정부, 국회 모두 혼돈으로 치달으면서 총체적인 리더십 붕괴 우려마저 나온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경제다.

전직 고위 관료 및 경제연구소장 등 전문가들은 6일 “정치 리스크에서 경제를 분리해 경제라도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 소용돌이에서 경제를 방치하는 상황이 길어지면 ‘제2의 외환위기’ 국면으로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경제부총리라도 제대로 일하게 하자"
국내 경제는 빠르게 가라앉고 있다. 성장 동력이던 수출은 2년째 감소세다. 경기를 떠받치던 소비와 건설투자마저 꺾였다. 4분기는 물론 내년 1, 2분기도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거론된다. 대외 변수도 만만치 않다. 당장 8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 다음달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 등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하나같이 국내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대형 변수다. 결과에 따라 국내 외환 및 금융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런데도 경제를 챙기는 리더십은 실종됐다. 경제부총리 교체 인사가 이뤄졌지만, 야당의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 철회 요구에 묻혀 부총리의 국회 인사청문회도 하염없이 늦춰질 조짐이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정치 혼돈에 경제를 방치할 정도로 결코 한가하지가 않다”며 “총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경제부총리까지 붙잡고 있으면 경제는 누가 살리느냐”고 했다. 그는 “경제부총리는 야당부터 나서서 빨리 청문회를 열고 인준을 통과시켜 경제살리기에 매진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 공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자 일각에선 “경제를 정치로부터 분리하자”는 말까지 나온다. 새누리당 경제통인 한 의원은 “경제는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고 예산안 처리 등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국회 16개의 상임위원회는 모두 최순실 씨 문제를 걸고넘어지고 있다”며 “정치로 인해 경제가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여야가 경제를 ‘치외법권 지역’으로 선포해서라도 경제를 정상 운영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공 상태에 빠진 경제팀

위기 상황에서 경제를 책임져야 할 경제팀은 지난주 갑작스러운 개각으로 ‘진공 상태’에 빠져 위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신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됐지만 야당이 김병준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와 함께 인사청문회를 전면 거부하고 있어 임명 여부가 불투명하다. 그러다 보니 물러날 유일호 부총리가 일상적인 업무를 챙기고, 임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면서 기재부 관료들로부터 주요 업무를 보고받는 어정쩡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지난주 김 총리 후보자가 자신도 사회와 경제문제를 챙기겠다고 해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경제 컨트롤타워가 신임 총리 후보자와 부총리 후보자, 현직 부총리 등 3명이 존재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도대체 누구의 지침을 받고 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산적한 경제 현안

총리와 부총리 인사청문회를 놓고 여야 간 대결이 장기화되면 최소 한 달간 경제 컨트롤타워 부재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현 경제 상황이 이런 ‘임시 체제’로 대응하기엔 너무 엄중하다는 점이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조차 지난 4일 “최순실 사태가 대한민국을 급속하게 블랙홀로 몰아가는 와중에 우리는 정작 가장 중요한 ‘민생’을 잊고 있다”며 “이미 9월의 생산·소비·투자 활동의 위축 정도는 경제위기의 조짐을 읽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당장 내년 경제와 민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400조원 규모의 예산안 처리, 세법 개정안 통과 등이 대기 중이다. 다음달 예정된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에 따른 국내 시장 안정 방안, 내년 경제정책 방향 등도 짜야 한다. 8일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도 국내 경제에 커다란 파장을 미칠 변수다. 여기에 폭증하는 가계부채, 기업구조조정, 경기 급하강 등도 치밀한 관리에 실패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대규모 위기로 번질 위험마저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리더십 공백이 장기간 발생하면 소비와 투자 위축은 물론 국제 신뢰도 급격히 하락하면서 외화 유출과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전 국무총리실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선 문제와 노동개혁 등 각종 과제가 후퇴하면서 발생한 1997년의 외환위기 징조들이 지금 되풀이되고 있다”며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거론했다.

◆“경제부총리 청문회 분리 처리해야”

이런 위기 상황을 맞아 정치 리스크의 경제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여야 합의에 따른 거국내각 구성 등이 당장 힘든 상황이라면 경제부총리 인사청문회만이라도 조속히 열어 신임 부총리가 컨트롤타워를 맡아 경제를 챙기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믿을 건 관료들밖에 없다”며 “대통령과 여야가 경제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면 경제부처는 스스로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복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이것이 현시점에서 정치의 경제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열/김재후/심성미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