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위작 스캔들
위작의 역사는 예술의 역사만큼 길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조각품이 대부분이었으나 15세기 이후 회화와 판화가 주를 이뤘다. 유럽에 미술시장이 생긴 뒤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렘브란트, 고흐 등 인기 작가의 위작이 급증했다.

가장 유명한 위작범은 네덜란드 화가 메이헤런이다. 그는 ‘진주 귀고리 소녀’로 유명한 베르메르의 작품을 정교하게 베꼈다. 이를 나치 2인자 괴링에게 팔아넘겼다가 종전 후 ‘네덜란드의 보물을 나치에 팔았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섰다. 위기에 처한 그는 감금 상태에서 붓과 물감으로 작품을 완벽하게 재현해냄으로써 일약 ‘나치를 속인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가난한 작가를 고용해 사기를 친 인물도 많았다. 영국의 존 드류라는 사기꾼은 화가 마이어트에게 10년간 200여점을 그리게 했다. 작품 진위를 가리는 출처를 위조하고 위작 사진을 기존 기록물에 끼워 넣어 미공개작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마이어트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자신의 그림이 25만파운드(약 3억6000만원)에 낙찰된 뒤 이용당했다는 걸 알았지만 2억원을 건네받고는 범행을 계속했다.

뉴욕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던 엘리 사카이는 중국 이민자들을 고용해 진품을 베끼게 했다. 위작은 아시아에 팔고 진품은 유럽이나 미국에 팔았다. 르누아르의 ‘목욕을 한 소녀’를 소더비에서 35만달러(약 4억원)에 사 베낀 뒤 위작을 도쿄 딜러에게 5만달러(약 5700만원), 진품은 소더비에 65만달러(약 7억4000만원)에 되팔아 35만달러를 챙기는 식이었다.

국내에서도 위작 시비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03년 이후 10년간 작가 562명의 작품으로 알려진 5130점 가운데 26%(1330점)가 위작으로 판명났다. 이중섭(108점) 천경자(99점) 박수근(94점) 작품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미술품의 진위는 안료분석 같은 과학 감정, 전문가 안목 감정, 출처 분석 및 작가 의견을 통해 가려낸다. 그러나 워낙 정교한 데다 분석 과정의 오류 등으로 확실한 결론을 내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서구에 비해 감정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다. 천경자가 “내 작품 아니다”고 하거나, 이우환이 “내 작품 맞다”고 해도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엊그제 프랑스 감정단은 고(故) 천경자 ‘미인도’의 진품 확률이 0.0002%라는 분석 결과를 검찰과 유족에 제출했다. 소장자인 국립현대미술관은 “침소봉대”라며 진품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체 어느 쪽이 맞는 건지, 하늘 아래 진실은 하나뿐일 텐데….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