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씨 국정 개입 의혹이 불거진 뒤 대국민 사과에 이어 청와대 참모진을 교체하고 김병준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사과는 각종 의혹을 속시원히 해소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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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두 번째 사과'] 민심 가르는 '사과의 정치학'…1차 사과땐 '3대 요건' 빠져 거센 역풍
총리 후보 지명 과정에서 정치권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지 않아 야당은 물론 여당 내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는 사이 최씨가 국정 전반과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더욱 확산됐다. 검찰에선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에 관여한 정황을 포착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지난달 25일 첫 사과부터 들끓는 여론을 수습하기엔 미흡했다는 평가다. 박 대통령은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 표현 등에서 최씨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며 최씨가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보고 고친 사실을 인정했다.
4일 오전 10시35분 서울 세종대로 사거리 앞 대형 전광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생중계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해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라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4일 오전 10시35분 서울 세종대로 사거리 앞 대형 전광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생중계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해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라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구체적인 연설문 유출 경위와 기간, 위법성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최씨가 인사, 예산에까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다.

형식도 논란을 낳았다. 박 대통령은 483자 분량의 사과문을 1분40초간 읽는 장면을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으로 내보내 ‘녹화 사과’라는 비난을 받았다.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아 여전히 ‘불통’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사과가 효과를 내기 위한 조건들을 다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지호 전 의원은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여지려면 신속해야 하고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박 대통령 사과는 그렇지 않았다”며 “효과적인 사과의 조건을 잘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인적 쇄신도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 사과 직후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선 일괄 사표를 낼지를 놓고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원종 전 비서실장과 김재원 전 정무수석은 일괄 사퇴를 주장한 반면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은 “사태 수습이 먼저”라며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3일 뒤인 지난달 28일 청와대 수석 10명 전원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했다. 이어 30일 비서실장, 정책조정·정무·민정·홍보수석과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이재만 총무·정호성 부속·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을 해임했다.

지난 2일 개각은 정국을 더 꼬이게 했다. 박 대통령은 정치권에서 거국중립내각 구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불쑥 총리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국민안전처 장관 후보자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총리 지명에 앞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새누리당 상임고문단, 시민사회 원로들을 청와대로 불러 의견을 들었지만 야당과는 협의하지 않았다.

총리와 국무위원 임명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지만 비상 시국인 만큼 야당 의견을 들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여소야대 국회에서 총리 인준을 위해선 야당 동의가 필수적이다. 야당은 “총리 임명 동의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며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였다. 여당에서조차 비주류를 중심으로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총리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숙한 대응이 거듭되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고 대통령 지지율은 추락을 거듭했다. 박 대통령은 사과 열흘 만에 또 대국민 담화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