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시카고
시카고는 짧은 도시 역사에도 스토리가 참 많다. 시카고의 별칭이 그런 스토리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우선 ‘윈디 시티(Windy City)’가 가장 유명하다. 바다를 방불케 하는 미시간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름엔 고맙지만 겨울이면 뼈가 시릴 정도다. 역대 최저기온이 영하 33도까지 내려갔다.

시카고란 이름은 아메리카 원주민 말로 야생 마늘을 뜻하는 ‘shikaakwa’에서 유래했다. 17세기 프랑스 탐험가 라베르 드 라살이 회고록에서 이 지역을 ‘세카고우(Shecagou)’로 기록하면서 알려졌다. 1803년 디어본요새로 출발한 시카고는 1834년에야 시(市)가 됐다. 1840년 4470명이던 인구가 50년 뒤엔 100만명을 돌파했다. 뉴욕 다음 가는 도시로 ‘세컨드 시티’란 별명을 얻었다. 이런 급팽창은 대륙횡단철도(1870년) 등 교통의 핵심 요지였던 덕이다. 현재 인구는 대도시권(시카고랜드) 272만명, 광역권 952만명으로 뉴욕 LA에 이어 세 번째다.

알 카포네와 마피아도 빼놓을 수 없다. 얼굴에 흉터가 있어 ‘스카페이스(Scarface)’로도 불린 카포네는 1919년 금주령 시대에 뉴욕에서 시카고로 넘어와 온갖 불법을 저질렀고 조직 간 전쟁도 밥먹듯 했다. ‘어깨들의 도시(City of the Big Shoulders)’란 별칭과 뮤지컬 ‘시카고’가 그 시절을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완전 딴판이다. 범죄도시 오명을 씻고 세련된 문화·관광도시가 됐다. 단정한 마천루들, 골목마다 들리는 재즈와 블루스, 명물먹거리 ‘딥디시 피자’, 현대 미술과 박물관…. 한때 세계 최고였던 시어스타워, 옥수수 모양의 마리나시티, 거대한 은색 땅콩 모양의 클라우드게이트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연간 약 4500만명이 다녀갈 만하다. 이런 변신은 1871년 대화재로 도심 절반이 소실된 이후 오랜 재건의 결과다.

경제 면에서도 시카고는 미국의 핵심도시다. 곡창지대와 인접해 시카고상업거래소(CME), 시카고거래소(CBOT) 등 양대 선물거래소가 있다. 시카고대는 노벨상 수상자만 30명을 배출했고 ‘시카고학파’를 통해 자유주의 경제학의 총본산 역할을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 대학에서 강의했다.

어제 시카고에서 난리가 났다.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컵스가 무려 108년 만에 ‘염소의 저주’를 끊고 우승했기 때문이다. 농구에선 마이클 조던(시카고 불스) 덕에 으쓱했지만 컵스팬들은 증조 할아버지 이후 처음 우승을 맛봤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시카고에 스토리가 하나 더 추가됐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