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암동 문화창조융합센터.
서울 상암동 문화창조융합센터.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며 최순실 씨와 더불어 국정 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CF감독 차은택 씨가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이 사실상 끝장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프로젝트의 3대 핵심 사업이 모두 무산되거나 차질을 빚고 있다.

대한항공이 서울 송현동에 조성키로 한 ‘K익스피리언스’는 전면 무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서울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을 리모델링하기로 한 ‘K팝아레나’는 K팝 공연장을 조성하는 게 아니라 기존 경기장 시설을 개선하기 위한 단순 시공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J그룹이 경기 고양시에 조성키로 한 ‘K컬처밸리’도 차씨 개입 논란이 확산되면서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잿밥에 눈이 팔려’ 기업들을 무리하게 끌어들인 부작용이란 분석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단독] '빛 좋은 개살구' 된 문화창조융합벨트…사실상 해체 수순
◆K익스피리언스 시작도 못해

문화창조융합벨트는 지난해 2월부터 문체부가 추진 중인 한류 클러스터 조성 프로젝트다. 한류 문화콘텐츠와 관련한 기획-제작-구현·소비-인재육성의 단계별 프로세스를 벨트로 묶는다는 것. 테마파크, 공연장 등을 한데 모은 K컬처밸리, 전통문화 체험공간으로 구성된 K익스피리언스, 한류스타 등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전용 공연장 K팝아레나가 핵심 사업이다.

대한항공 고위 관계자는 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K익스피리언스 사업을 하겠다고 발표는 했지만 이후 아무것도 진행된 것이 없다”며 “앞으로 계획도 없고 (사업이) 무산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서울시의 허가도 받지 못했고, 착공은 물론 투자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서울 송현동의 대한항공 소유지에 조성할 예정이던 K익스피리언스는 기존 계획대로라면 올해 7월 착공해 내년에 1차 공정을 끝내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차씨의 개입으로 문체부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자금 여유가 별로 없는데 이 사업을 맡았다”며 “사채 발행 등을 통한 투자를 유치하기도 힘들어 사업을 적극 추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체부가 서울시와 미리 협의도 하지 않고 밀어붙이다 결국 이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K팝아레나에 대해선 사업 내용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K팝아레나는 내년까지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올림픽체조경기장을 리모델링해 K팝 전용 공연장으로 재조성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좌석이나 무대 디자인을 전혀 바꾸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 천막으로 된 천장을 철골 구조로 바꾸고 내진 시설을 보완하는 게 전부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건설사에 발주한 공사명도 ‘K팝아레나’가 아니라 ‘체조경기장 시설개선공사’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이날 “K팝아레나 조성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안전성을 보완하는 수준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CJ가 고양시 대화동에 지을 K컬처밸리도 CJ에 대한 외압설, 특혜설 등이 제기되고 있어 문화창조융합벨트의 핵심 사업은 사실상 모두 초토화된 셈이다.

◆벤처단지 등도 부실 논란 휩싸여

이미 진행 중인 나머지 사업도 부실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다동의 옛 한국관광공사 건물에 마련된 문화창조벤처단지엔 93개 업체가 입주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론 절반이 비어 있다. 입주 기업들조차 계속 불거지는 의혹 때문에 이곳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도 미미하다. 단지의 1년치 임대료와 관리비는 9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투자 유치는 39억원에 불과하다. 문화창조아카데미도 마찬가지다. 35억원의 예산을 썼지만 수강생은 45명뿐이다.

◆문체부 “사익 연루 사업 무조건 폐기”

문체부의 한 전직 간부는 “문화융성을 위한 주요 프로젝트였던 문화창조융합벨트가 사실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며 “기업들도 여기에 억지로 들어오다 보니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지난달 31일 문화창조융합벨트 프로젝트를 전면 재정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재정비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예산도 전면 삭감될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문화창조융합벨트에는 지난해 119억원이 집행됐다. 올해엔 7배가 넘는 904억원이 들어갔다. 내년엔 1278억원이 책정돼 있다. 이에 대해 야당 의원들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전액 삭감을 주장하고 있다.

정관주 문체부 제1차관은 이날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씨와 그의 핵심 측근 차씨가 사익을 챙기는 데 동원된 사업은 예외 없이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의 ‘문제사업 재점검·검증 특별전담팀’ 팀장을 맡은 정 차관은 “이번 재점검과 검증은 문체부 전 사업을 대상으로 하며, 의혹의 중심에 있는 두 사람과의 관련성, 사익 추구, 법령을 위반한 무리한 추진 등 3개 기준을 적용해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