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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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1997년 정계 진출 이후 여러번 위기 상황을 정면돌파해 성공했다. 위기가 박 대통령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박 대통령은 1997년 12월10일 대선을 8일 앞두고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 지지 선언을 하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4·2 재·보선에서 대구 달성에 출마해 당선됐다. 박 대통령은 애초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편을 잡았던 경북 문경·예천에 출마하려 했으나 한나라당 지도부는 판세가 심상찮았던 달성 출마를 권했고, 박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당시 달성은 엄삼탁 국민회의 후보가 만만찮은 세를 형성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2002년 2월 제왕적 총재직 폐지 등 당 개혁안이 거부되자 한나라당을 탈당한다. 정치권 입문 이후 첫번째 ‘모험’이다. 그해 5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회담했고, 이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그렇지만 여의치 않았다. 11월 한나라당에 재입당해 대선 선대위 의장을 맡았다.

2004년 차떼기 정당 오명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한나라당은 ‘폐당’위기에 몰렸고, 박 대통령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제의했다. 주변에서 ‘독배’를 드는 것이라고 말렸다. 박 대통령은 “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사람이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며 수락했다. ‘천막당사’로 상징되는 그해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구해 낸 박 대통령은 이후 재·보선 등 각종 선거때 마다 이겨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고, 대선 주자로 우뚝 섰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유세 땐 ‘커터 칼 테러’를 당했고, 선거는 압승을 거뒀다. 박 대통령의 ‘대전은요?’ 라는 한마디가 선거 판세를 가르는 요인이 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했고, 승복했다. 하지만 2008년 총선 때 친이명박계 주도의 공천에 대해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는 발언을 하며 친박근혜계 돌풍을 주도해 당내 만만찮은 세를 확보했다.

이를 기반으로 박 대통령은 2010년 이 전 대통령이 주도한 세종시 수정안 반대를 주도해 관철시켰다. 2011년엔 디도스 사건이 터지면서 한나라당이 위기에 몰리자 다시 비대위원장을 맡아 이듬해 총선 승리를 이끌었고,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위기때 마다 정면돌파 승부수를 띄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혔다.

◇ 최순실 의혹도 정면돌파 선택…‘마이웨이’ 통할까?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 대처도 정면돌파를 택했다. 정치권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김병준 총리 후보자를 지명한데 이어 3일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비서실장에 발탁했다. ‘박근혜식 마이웨이’다.

이런 승부수가 또 통할까. 이번엔 위기 원인의 성격이 과거와 판이하게 다른다. 이전의 위기의 원인은 박 대통령 본인의 허물에 있지 않았다. 당 차원의 위기 또는 정책과 관련한 이견 때문이었다. 이번 ‘최순실 파문’은 대통령 본인과 직결된 문제다. 박 대통령 자신이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과거엔 민심에 호소하는 ‘대국민 직접정치’가 가능했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다. 하야 해야 한다는 국민이 절반을 넘는 상황이다.

거대 야당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내 비박근혜계 의원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탄핵국면으로 가더라도 국회에서 새누리당 지도부가 막아낼 수 있으리라 장담을 못하는 의석구도다. 탄핵 요건은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을 얻어야 한다. 300명 가운데 20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은 129명이다. 새누리당 의원 29명이 돌아서면 탄핵은 가능하다. 대통령과 정치권의 마찰이 심화되고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새누리당 내 비박계가 탈당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산술적으로 탄핵이 가능할 수 있다. 물론 대통령 탄핵·하야는 최후의 수단이다. 야당도 정치적 후폭풍이 어떻게 불지 장담을 못하고 있다. 내년 대선 구도를 완전히 바꿀수도 있다.

◇ 세가지 시나리오…각각의 정국 파장은?

거대한 벽과 마주선 박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다. 대국민사과와 함께 김병준 후보자에게 명실상부한 책임총리 지위를 주겠다고 약속한 뒤 야당을 설득해 현 상황을 돌파하는 방법이다. 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검찰조사를 받는 것도 수용하겠다고 할 수 있다. 김 후보자는 박 대통령의 수사 필요성에 대해 “헌법규정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이 있지만, 저는 수사와 조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다만 “국가원수인 만큼 절차와 방법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웅 법무장관도 “박 대통령도 엄중한 상황임을 충분히 알 것으로(생각하고), 저희도 수사 진행결과에 따라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하다면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검토해 건의할 것”이라고 했다.

야당이 김 후보자 청문회 자체를 보이콧 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어서 박 대통령의 이런 정면돌파 방법이 관철되기는 쉽지 않다. 김 후보자를 임명하려면 국회 본회의에서 출석의원 과반 이상의 찬성이 팔요하기 때문에 야당이 반대하면 내각 구성이 어렵다.

박 대통령이 결국 김병준 카드를 접고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거국내각 구성을 수용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떼밀려서 하는 모양새다. 내각 구성에 관여할 수 없는 만큼 내정에서 사실상 쏜을 떼게 된다. 외교·안보 분야 등은 대통령에게 맡긴다고 하지만 대통령의 영향력이 대폭 줄어들게 확실하다. 정치권은 외교·안보 분야에도 관여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주요 국정현안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갈려 갈등을 벌이면서 국정운영이 표류할 공산이 크다.

박 대통령이 내각 구성권을 잃게 되고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하야의 길을 택할 수도 있다. 하야하게 되면 60일내로 차기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지 않으면 결국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게 되고 대선을 관리해야 한다. 야당도 큰 부담이다. 야권의 유력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반드시 유리한 구도가 형성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야권의 제3후보들이 ‘반문재인’을 형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년 초에 대선을 치르게 되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해 검증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채 대선에 임하게 될 수도 있다. 야권으로선 불리한 구도다. 때문에 야당도 대통령 하야를 섣불리 입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

‘최순실 파문’은 정국에 안갯속을 드리우고 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