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CU의 상품연구소를 책임지고 있는 조성욱 BGF리테일 상품기획팀장은 지난여름 순대국만 100그릇 넘게 먹었다. 순대로 유명한 충청도 병천과 전라도 피순대 맛집을 방문했고, 프랜차이즈 브랜드 순대국도 모두 먹어봤다. 순대국 맛집을 찾아 돌아다닌 거리만 8000㎞. 조 팀장 등 연구원들이 ‘발품을 팔아’ 개발한 돈사골액상소스는 지난달 출시한 순대국밥도시락의 기본이 됐다. 이 제품은 뭔가 색다른 도시락을 찾는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면서 출시 3주 만에 CU 전체 도시락 매출 순위 6위에 올랐다. 일반적인 도시락 신제품보다 매출이 35%가량 높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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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연구소, 국물도시락 맛 찾아 '8000㎞ 국밥순례'
◆도시락 개발 주도하는 연구소

편의점 상품연구소가 히트 상품 ‘산파’ 역할을 하고 있다. 상품연구소는 그동안 제조업체로부터 레시피(요리법)를 받아 점검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직접 제품을 개발하는 제조업체의 연구소 역할을 하며 핵심 부서로 떠오르고 있다. 각사는 브랜드 충성도가 높지 않은 편의점산업 특성상 차별화한 상품을 내놔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해 연구소를 활용한 자체상표(PB) 제품 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편의점업계 1위인 CU는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있는 본사 지하에 상품연구소를 꾸렸다. 165㎡ 크기의 연구소에선 11명의 직원이 도시락과 간편식, 제과 제품 등을 만들고 맛보고 검사한다. 이 상품연구소에서 개발한 제품은 120여종에 이른다.

CU 상품연구소의 최고 히트작은 백종원 씨와 함께 개발해 선보인 도시락. 올해 초 내놓은 ‘백종원 한판도시락’은 CU 전체 상품 중 매출 1위다. 1~9월 도시락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세 배로 증가했다. 이 덕분에 전체 매출에서 도시락 등 간편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5%대에서 올해 10%대로 높아졌다.

작년 한 해에만 1500만개가 팔린 편의점 GS25의 ‘김혜자 도시락’의 인기 뒤에도 GS리테일 식품연구소가 있다. 2010년 출시된 김혜자 도시락은 식품연구소가 출범한 2013년 이후 판매가 급격히 늘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5명의 셰프 등 연구원들이 테스트 키친에서 최적의 맛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혜리 도시락’을 내놓은 세븐일레븐은 모회사 롯데그룹의 식품연구소에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상품 주도권 유통사로 넘어왔다”

편의점들은 상품연구소가 본격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식품 트렌드의 주도권이 제조사에서 유통사로 넘어왔다고 보고 있다. CU 상품연구소의 조 팀장은 올해 라면업계 최고 인기 상품인 부대찌개라면을 편의점이 트렌드를 주도한 대표 사례로 꼽았다. CU는 부대찌개라면 열풍이 불기 전인 작년 말부터 오뚜기와 손잡고 부대찌개라면을 개발했다.

올 들어 9월까지 김밥 카테고리 1위를 달리고 있는 백종원 한줄김밥은 작은 아이디어가 상품화돼 큰 인기로 이어진 사례다. 조 팀장은 “최고 인기 도시락인 백종원 한판도시락을 김밥으로 만들어 보자는 단순한 아이디어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가 개발한 상품들은 해외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 백종원 한판도시락은 편의점 선진국인 일본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 팀장은 “일본은 장어덮밥 등 한 가지 품목을 활용한 도시락이 대부분인 반면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백반 형태 도시락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출도 시작됐다. CU는 중국과 미국 등에서 PB제품을 팔고 있다. 조 팀장은 “한국에 여행온 각국 소비자들이 제품을 수출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