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운행을 시작하는 수서발 고속열차(SRT)는 고속철 같지 않았다. 2일 오전 10시10분 수서역을 출발하자마자 국내 최장 터널인 율현터널(52.3㎞)에 진입하면서 창밖이 캄캄해졌다.

지상구간이 전혀 없는 서울 지하철 5호선과 비슷했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KTX처럼 차창 밖으로 한강변 풍경이나 도심의 ‘속살’을 보는 재미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속도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수서역을 출발한 열차는 기존 KTX 노선과 만나는 평택분기점까지 18분 만에 도착했다.

열차 안은 쾌적했다. 짙은 자주색 의자는 실내를 넓어 보이게 했다. 편의시설은 KTX에 비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순방향·역방향 구분이 있는 KTX와 달리 모든 의자는 방향 전환이 가능해 가족단위 승객들은 마주 보고 기차여행을 즐길 수 있다.

앞좌석과 뒷좌석 간 간격은 96㎝. KTX 대비 75㎜, KTX-산천보다 57㎜ 넓어졌다. KTX에서 대표적인 불편사항으로 지적됐던 전기 콘센트도 설치됐다. 등받이 각도 변경(최대 37도)도 버튼식으로 바꿨다.

특실은 무릎 공간이 106㎝나 된다.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목베개가 있다. 짐을 올려놓는 선반도 수하물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항공기 방식의 밀폐형으로 바꿨다. 최대 41도까지 젖혀지는 등받이 각도 조절은 전동식이다. 특실 의자 역시 방향이 전환된다.

SRT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안전성’이라는 게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설명이다. 수서역에서 평택분기점까지 60.9㎞ 구간에 승객 대피 통로는 총 20개다. 대피공간 간 평균 간격은 2.4㎞로 열차 화재 시 짧게는 3분, 길어도 20분 안에 지상으로 대피할 수 있다고 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말했다.

열차 및 터널 내 모든 시설은 난연재로 시공했고 500m마다 소화기를 비치했다. 눈에 띄는 소방시설은 총 61대의 제연·배연설비다. 열차에 화재가 발생해 멈추면 대피하는 승객들의 반대 방향으로 바람을 불어넣고 반대 방향 설비는 유해가스를 빨아들이는 방식이다.

SRT를 이용하면 수서에서 부산까지 2시간9분, 목포까지는 2시간6분이 걸린다. 요금은 KTX에 비해 약 10% 싸다. 이날 시승을 함께한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철도 역사 117년 만에 경쟁 체제가 도입되는 만큼 요금 인하 등 획기적인 서비스 개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