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에 집중하는 지금의 정책으로는 농업의 미래가 없다는 지적이 또 제기됐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한 토론회에서 내놓은, 당연하면서도 뼈아픈 훈수다. 박 회장은 쌀을 고급화해도 살아남기 힘들다며 농업정책의 대전환을 촉구했다. 1980년 132.4㎏에 달하던 1인당 쌀 소비량이 지난해 62.9㎏으로 반토막 난 데서 보듯 사람들의 식생활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대체 먹거리도 넘치는 시대다.

그래도 정부는 쌀에 예산을 몰아주는 관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 예산 14조4000억원의 35%인 5조원이 수매, 직불 등을 통해 쌀로 들어간다. 쌀 예산이 너무 커 다른 사업은 엄두도 못 내는 악순환이다. 올해처럼 풍년이라도 들면 골병이 더 깊어진다. 풍작으로 햅쌀 가격이 21년 만에 13만원 아래로 추락한 올해는 변동직불금이 WTO가 정한 농업보조총액한도(1조4900억원)를 넘어서는 초유의 사태가 우려된다. 책정해둔 변동직불금 예산 9777억4700만원이 턱없이 모자라 5122억5300만원을 증액해야 할 처지다.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농업은 이제 지속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공유가 절실하다. 과격한 농민단체와, 이들의 눈치를 보는 정치권의 식량안보에 대한 과장도 중단해야 한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라 쌀시장을 개방한 이래 1995~2015년 농가에 지급된 총 보조금이 200조원을 돌파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지원했음에도 농촌과 농업의 경쟁력이 나아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더 많은 보조금을 요구하는 아우성이 매년 높아질 뿐이다. 농가소득도 10여년째 연 3000만원 수준에 정체돼 있다.

농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선에 불과하다. 그래도 세금으로 쏟아붓는 농업보조금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농가소득의 5분의 1을 세금으로 채워주는 기형적 구조다. 뉴질랜드는 1984년 ‘모든 보조금 동시 폐지’라는 충격 조치를 통해 고사 위기의 농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탈바꿈시켰다. 보조금 약발에 의존해서는 농업의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