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화가 정경연 교수가 현대화랑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어울림’을 설명하고 있다. 현대화랑 제공
섬유화가 정경연 교수가 현대화랑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어울림’을 설명하고 있다. 현대화랑 제공
국내외 화단에서 ‘장갑 작가’로 잘 알려진 정경연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61)는 1974년 홍익대 미대 2학년 때 결혼했다.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 미대와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 대학원에서 염직공예를 공부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친정 엄마가 소포로 보낸 면장갑을 받았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행여나 손이 틀세라 보내준 어머니의 마음이 떠오르면서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손부터 면장갑을 끼고 새벽부터 바삐 일하는 환경미화원, 공사장 노동자 등 수많은 손과 장갑의 이미지가 스쳐 지나갔다.

지난 40년 동안 그에게 장갑은 때론 캔버스가 되고 오브제가 됐다. 두툼한 면장갑을 창작의 소재로 삼아온 그는 제1회 석주미술상(1989), 이중섭미술상(2008)을 수상하며 ‘섬유화가’로 입지를 굳혔다. 미국 대만 일본 등 해외 유명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할 정도도 국제적 위상도 탄탄하다.

국내 최초로 ‘섬유회화’를 개척한 정 교수가 2일부터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3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전시 주제는 ‘생성의 파노라마’. 장갑 안에 솜을 넣어 입체미를 더한 설치작품을 비롯해 비디오 영상, 모노톤 작업, 화려한 색감을 아우른 최신작 등 30여점을 선보인다.

정 교수는 작업용 면장갑을 염색하거나 이어 붙이고 때로는 손가락 부분을 늘리거나 변형해 자신의 이야기는 물론 자연의 생성, 변화, 소멸 과정을 표현한다. 면장갑이 무엇보다 서민적인 소재여서 마음에 든다는 그는 “손을 보호하는 장갑이 마치 사람들의 아픔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정 교수는 작업 과정을 ‘수행’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는 “수행승이 깨달음의 환희를 게송(偈頌)으로 표현하듯 나는 면장갑으로 자신을 비워낸다”며 “장갑에 특정 스토리를 담기보다는 수수께끼 같은 우발적인 이미지를 쏟아내 묘한 긴장감을 연출한다”고 설명했다. 직관이 녹아든 순간을 잡아내기 때문에 수행과 같은 의미가 더 강하다는 얘기다.

그의 작업 과정은 보기보다 까다롭다. 장갑에 일일이 색을 칠하거나 염색한 뒤 말리고, 찌고, 다림질하고, 캔버스에 고정하는 작업을 거쳐야 완성된다. 2000년대 이전에는 흑백 단색조의 작품 이름을 ‘무제’로 붙였다. 제목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무한한 제목’이라는 생각에서다. 근래에는 사람의 땀과 체취를 담아내기 위해 화려한 채색을 더하면서 제목도 ‘어울림’ ‘중생’ ‘하모니’ ‘블랙홀’ 등으로 변화를 주고 있다. 그는 “장갑은 대상을 감싸안는 모성의 표상이자 서민적인 향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소재여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02)2287~359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