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윤의 '중국과 中國' (6) 체면<2>] 모두의 체면이 유지되는 게 최고 해법
중국인이 체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실에서의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본다. 중국인들과 회의하다 보면, 자신들의 의견을 먼저 내는 경우가 별로 없다. 대부분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다. 상대방이 체면을 상해 불쾌해할 염려가 우선이다 보니 자기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드러내서 잘 표현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會上不說會後亂說(회의에서는 말 안 하고, 회의가 끝나면 마구 떠든다)’의 경우다.

집단토론을 할 때 ‘상대방 또는 상대 부서의 잘못을 책상 위에 올려 놓고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은 생각보다 효과가 적다. 대부분 ‘잘못에 대한 인정과 해결’보다는 ‘나를 겨냥한 지적’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중국인들은 토론의 내용보다는 상대가 내 편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데 집중한다”고 말한다.

중국인에겐 人情이 곧 원칙

[류재윤의 '중국과 中國' (6) 체면<2>] 모두의 체면이 유지되는 게 최고 해법
냉소적인 비판으로 유명한 젊은 문화연구자 장이민은 “중국인은 화합(和合)을 지나치게 중시한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중국 사람은 논쟁을 즐기나 사실은 논쟁 자체와는 무관하다. 중국인들의 논쟁에서 중점은 바로 논쟁자의 태도다. 논쟁 중에 상대방의 논리 등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그들의 위치, 즉 ‘너는 누굴 위해 말하는가?’가 바로 사람들과 논쟁할 때의 중점이다. 그러다 보니 건설적인 토론보다는 집단 간의 충돌과 모순을 강화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우리도 비슷하다고? 중국인들이 훨씬 심하다! 어떤 학자는 중국인의 ‘체면’은 마치 남태평양 토인들의 금기(禁忌)와도 같다고 말한다.

한 번은 모 회사가 공금을 횡령한 직원을 고발했다. 어찌된 일인지 공안당국에서 나서지 않았다. 평소 잘 아는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처음에는 “말이 안 되는 사건이네요. 걱정말라고 하세요”라는 답을 들었는데, 며칠 뒤 “이 일은 내가 도와주기가 곤란하네요. 이미 몇 달 전에 해당 경찰 쪽에서 어렵답니다”는 답변을 들었다. 증거도 명백하고, 본인도 잘못을 시인했는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바로 동료가 이미 봐주기로 말한 건을 뒤집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뒤집는 순간 그 동료의 체면은 상한다.

이중톈 교수는 “중국인은 인정만을 중시하고, 원칙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정확하지 않다. 정확히 표현하면 ‘인정이 바로 원칙’”이라고까지 말한다. 나와 관계가 있는 상대방의 체면에 대한 배려다. 더 나아가 이렇게 체면과 관련해 발생한 문제는 반드시 체면을 고려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어느 부서 또는 책임자가 어느 날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불합리한 주장을 들고 나왔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주장만 강조하는 것은 중국에서는 최선이 아니다. 더구나 시급하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융단 폭격하듯이 공격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무턱대고 주위 부서를 통해서 또는 위에서부터 해당 부서나 담당자에게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행위는, 비록 그것이 우리 눈에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고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런 해결 방식은 때로는 치명적인 실수가 된다. 본래 단지 한 번 살짝 꼬인 실타래는 이럴수록 점점 더 복잡하게 꼬인다.

'설명'·'압박'보다는 '설득'이 필요

중국 말에 “下不了臺(무대를 내려올 수 없잖아)” “沒有臺階(내려올 계단이 없어)”라는 말이 있다. 상황에 따라선 “체면을 손상하지 않고, 무대에서 잘 내려오려 해도 방법이 없다! 이제 어쩌지?”의 의미가 된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 문화에서는 나의 소신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도 매우 중요하다. 무대 위에서 어쩔 줄 모르는데, 이럴 때 손가락질을 하고 지적질을 하면 곤란하다. 설령 그가 잘못 처신했다 하더라도, 그가 스스로 자신(또는 부서)의 체면을 잘 수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저명한 황광궈(黃光國) 대만대 교수는 중국식 중재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체면이 있는(사회 지위가 높은) 이가 나서서 ‘내 체면을 봐주라’고 얘기한다. 잘 해결됐다면 ‘모두 체면이 유지됐다(都有面子)’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논리적으로 옳을 수 있다. 하지만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과의 교류 역시 크고 작은 협상의 연장선에 있다면 윈윈하는 것이 당연히 최선일 것이다. 논리로만 무장한 ‘설명’과 ‘압박’보다는 체면을 염두에 둔 ‘설득’이 필요하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