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강남 아파트 '불패론'과 '필패론' 논쟁…해외 시각은
10년 전 당시 강남 아파트값이 떨어지는 시점에 한국 부동산 시장에 밝은 두 외국인 전문가가 상반된 주장을 들고나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하나는 1993년 이후 서울 아파트를 집중 연구해온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론’이다. 그는 ‘서울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아파트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라고 혹평을 내릴 정도로 한국은 아파트 위주의 기형적인 주거문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국민의 주거 형태에서 아파트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 비중은 1985년 13.5%에서 2015년에는 63.1%로 급증했다.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빠른 속도다. 한국과 국토여건이 비슷한 일본의 무려 세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한국인이 아파트에 열광하는 것은 아파트가 가장 유효한 재테크 수단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70~1980년대에는 시세차익이 보장되는 분양가 통제시스템의 아파트가 중산층의 주거문화로 자리잡았고, 분양가 자율화 시대에도 ‘아파트=재테크’ 등식이 성립돼 이 식이 깨지지 않는 한 ‘강남 불패론(不敗論)’은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하나는 일본의 이코노미스트인 다치키 마코토의 부동산 거품 붕괴론에 근거해 강남 아파트값은 반드시 떨어진다는 ‘강남 필패론(必敗論)’이다. 그는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 과정을 볼 때 한국도 저출산·고령화의 인구 구조와 기업의 해외 진출에 따른 공동화로 부동산 거품은 붕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강남 아파트 '불패론'과 '필패론' 논쟁…해외 시각은
특히 강남 사람을 중심으로 다른 곳은 급락하더라도 강남 아파트값은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불패론’을 믿고 있으나 그것은 큰 착각이라는 것이다. 199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 과정에서 일본의 강남으로 불리던 도쿄의 세타가야(世田谷) 지역 집값이 의외로 큰 폭으로 떨어진 사례를 들어 강남 아파트값도 반드시 떨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강남 아파트값은 ‘불패’냐, ‘필패’냐. 이 문제를 부동산값 예측에 관한 한 지금까지 가장 정확하다고 알려진 인구통계학적 기법을 통해 알아본다. 이 이론은 한 나라의 인구 구성에서 자기주택 소유의욕이 가장 강한 소위 자산계층이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부동산값이 결정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한 나라의 인구 구성에서 자산계층이 두터우면 부동산값이 높게 형성되고 중장기적으로는 현 자산계층이 은퇴하고 차기 자산계층이 어떤 형태로 채워주느냐에 따라 부동산값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만약 은퇴하는 자산계층보다 차기 자산계층이 더 두텁게 채워줄 경우 부동산값의 상승 국면은 지속된다고 보는 것이 이 이론에 근거한 예상이다.

한국의 인구통계 그래프를 보면 1965년까지 신생아 출산이 급격히 증가하다가 그 이후 추세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핵심 자산계층인 45~49세가 은퇴하기 시작하는 2018년 이후 한국 부동산 시장(특히 강남 아파트)은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해리 텐트의 ‘인구절벽(The Demographic Cliff)’에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되고 있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텐트의 주장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신흥국보다 미국의 위상을 너무 높게 본 것이 단점으로 지적돼왔다. 이 때문에 미국 와튼스쿨의 제러미 시걸 교수는 2010년 이후에도 중국, 인도, 브라질, 베트남 등에 의해 세계 경기가 지탱해나갈 수 있다는 ‘글로벌 해법’을 제시해 반박했다.

간단한 생산함수(Y=f(K,L,A), K=자본, L=노동, f( )는 함수 형태)를 통해 두 사람의 주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높은지 알아보자. 하나의 국가로 진전되는 시대에 생산함수의 적용대상을 세계로 확대시킬 경우 종전처럼 특정국이 보유한 인구 수와 인구 구성상의 한계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인구통계학적 기법을 토대로 강남 등 인기지역 아파트값을 예상해보면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는 2015~2018년 급락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다음(에코붐) 세대가 뒷받침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후 강남지역을 포함해 한국의 주택시장은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동시에 시사한다.

2차 대책 발표를 앞두고 강남 아파트값에 대한 예상이 흐트러지는 시점에서 해묵은 ‘불패론’과 ‘필패론’ 간 논쟁이 재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차 때처럼 임시방편으로 대응했다간 불패론에 다시 불을 지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식의 대책은 필패론으로 악화될 수 있다. 다소 늦더라도 연착륙시킬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한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