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사태 수습을 위해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순실 씨 파문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힘든 만큼 여야가 추천하는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새로 내각을 구성해 위기를 돌파하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고, 정치권의 권력 나눠 먹기로 인한 국정 혼선을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아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거국내각 구성 목소리는 여야에서 다 나온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27일 “국민의 신뢰를 잃은 리더십을 갖고 현재 체제가 유지돼서는 안 된다”며 “거국내각이 구성돼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에서 심재철 국회부의장과 정병국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등이 거국내각 구성에 찬성하고 있다.
정계 원로들 "거국중립내각 구성…국가 정상화 힘 모아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성명을 통해 “대통령은 국회와 협의해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강직한 분을 총리로 임명하라”고 요구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대통령이 제대로 된 리더십을 갖기 힘든 상황”이라며 “대통령 권한을 최소화하고 여야가 합의해 임명된 총리가 국정을 수습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28일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당적을 정리하고 거국내각 구성을 검토할 때”라고 말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31일 국회의장실에서 3당 원내지도부가 만나 비상시국에 대처하기 위한 국회 차원의 얘기를 할 것”이라며 거국내각 구성 논의 가능성을 열어놨다. 정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을 전면 개편하지 않으면 당 지도부도 전원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수한·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을 비롯한 정계 원로도 대폭적인 인적쇄신을 거친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정부 시스템의 붕괴이자 국가적 위기로 보고, 분단 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해 여야가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 정상화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거국내각은 여야가 합의해 총리를 추천하고 새 총리를 중심으로 내각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역할은 외교·안보 분야에 국한하고 새 총리가 그 밖의 내정을 담당토록 해 내년 대선까지 관리하자는 구상이다. 과거 노태우 정부에서 현승종 총리를 중심으로 한 중립내각이 구성된 바 있다. 다만 당시 대선을 2개월가량 남긴 시점에 구성된 ‘선거 관리용’이었다는 점에서 국정을 담당하는 명실상부한 거국내각과는 차이가 있다.

거국내각이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황교안 총리는 전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거국내각에 대해 “그렇게 간단하게 판단할 일은 아니다”고 했다.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은 “거국내각은 정치권이 담합해서 권력을 나눠 갖자는 의미”라며 “국정 최종 결정을 야당 대표가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거국내각이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만큼 헌법에 보장된 ‘책임총리제’를 구현해 총리에게 국정운영의 상당 부분을 맡기자는 주장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내각 개편과 관련해 정치권 요구를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중립내각 대신에 황교안 국무총리를 교체하면서 책임총리를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