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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만이 살 길이다"…연평균 9.2% 경제성장, 쌀·김 수출에서 합판·철강 등 공산품 수출로

입력 2016-10-28 19:41:40 | 수정 2016-10-28 19:41:50 | 지면정보 2016-10-31 S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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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쌤이 전해주는 대한민국 이야기 (39)
5·16 이후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했던 군사 정부는 농어민의 생계를 위협하던 이자 높은 빚을 정리해주기도 했다.기사 이미지 보기

5·16 이후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했던 군사 정부는 농어민의 생계를 위협하던 이자 높은 빚을 정리해주기도 했다.

경제개발 강력하게 추진

5·16군사정변으로 제2공화국이 막을 내리고 군사 혁명 세력이 주축이 된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군사 정부는 1963년 12월까지 2년 6개월 동안 대한민국을 통치했지요. 그들은 반공 체제를 강화하고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많은 개혁을 실시했습니다. 또 여러 가지 경제 개혁 안도 내놓았습니다. 농어민의 생계를 위협하던 이자 높은 빚을 정리해주기도 했습니다. 군사 정부의 이 같은 개혁은 정치 사회의 부패와 혼란에 염증을 느끼고 불안에 떨었던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군사 정부는 1963년부터 민간 정부로 정권을 넘길 것을 약속했습니다. 1962년 12월 새로운 민간 정부를 세우기 위한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새로운 헌법은 대통령 중심제를 정부 형태로 선택했지요.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거로 뽑으며 임기는 4년, 1차에 한해 중임이 허용되도록 했습니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던 부통령제는 폐지되었고 대신 국무총리제가 다시 실시되었습니다.

1963년 10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민정당의 윤보선, 국민의 당의 허정 등이 출마했습니다. 이전의 정치인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정치적 방종을 혼동한다고 비난했던 박정희는 윤보선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곧이어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3분의 2에 가까운 110석을 차지했습니다. 그 덕분에 박정희 정부는 경제 개발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이 시작되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경제 발전입니다. 6·25전쟁으로 대한민국의 전 국토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지 10년만인 1963년부터 한국 경제를 본격적인 고도 성장을 이루기 시작했지요. 1962년의 경제 성장률은 2.1%에 지나지 않았는데 1963년 갑자기 9.1%로 뛰어올랐습니다. 이 성장세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지속되어 박정희 정부가 이룩한 경제 성장률은 연평균 9.2%에 달했습니다. 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며 놀라워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가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는 우리 국민들의 능력과 노력을 들 수 있지요. 그리고 성장의 바탕에는 이승만 정부 때 미국의 경제 원조를 활용하여 잘 다져놓은 기간 산업과 교육의 기반이 있었습니다.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강력하게 실천해나간 박정희 정부의 추진력도 큰 힘을 발휘한 것은 물론 세계 경제의 성장도 한몫을 했습니다.

1963년부터 고도 성장을 했다고 하지만 박정희 정부도 초반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경제 개발을 위한 자금을 구하기 어려웠던 것이지요. 그때까지도 한국은 원조로 나라 살림을 꾸려가는 보잘 것 없는 후진국이었습니다. 그런 나라에 공장을 지으라고 돈을 빌려주는 외국의 금융 기관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공장을 짓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려면 수출로 달러를 벌어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제1차 경제 개발 계획 때부터 수출 증대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1962년의 수출 실적은 목표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수출 품목은 쌀, 김, 텅스텐, 석탄 등 1차 산업 품목이 대부분이었지요.

우리 경제가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는 우리 국민들의 능력과 노력을 들 수 있다 .기사 이미지 보기

우리 경제가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는 우리 국민들의 능력과 노력을 들 수 있다 .

1963년부터 공산품 수출에 초점

그런데 1963년부터 수출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수출 품목도 공산품이 3분의 1을 차지했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공산품이 수출 주력 상품이 된 것입니다. 공산품 수출의 주역은 철강재, 합판, 면포였습니다. 이들 산업이 느닷없이 수출의 주역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1950년대 이승만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으로 뿌리를 내려 꾸준히 해외 시장을 개척해온 산업 분야입니다. 이들의 수출이 활발해진 덕분에 박정희 정부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은 이승만 정부가 힘들게 뿌린 씨앗으로 박정희 정부가 열매를 맺게 한 것입니다.

공산품 수출의 가능성을 본 박정희 정부는 공산품 수출을 증강하는 방향으로 제1차 경제 개발의 길을 틀었습니다. 그 결과 1964년에는 “수출만이 살 길이다”라는 구호가 정부는 물론 민간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글 =황인희 / 사진=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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