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은퇴 후 희망을 행복수명에서 찾자
얼마 전 한국 골프계의 상징인 박세리 선수가 은퇴식을 했다. 그의 은퇴 소식을 접하며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양말을 벗고 새하얀 발로 물웅덩이에서 샷을 날리며 외환위기로 실의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던 기억, 또 하나는 39세인 그의 은퇴 나이다.

39세,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매우 이른 은퇴 나이다. 30~40대 나이에 은퇴한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은퇴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은퇴가 아니라 ‘대비해 맞이하는’ 은퇴가 되도록 은퇴준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기다.

은퇴는 직위와 관련된 활동에서 물러나는 것을 뜻한다. 일을 하며 누렸던 혜택이나 관계가 단절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그만큼 시간이 남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은퇴를 준비하는 것은 남는 시간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는 적절한 일거리나 사회적 활동과 여가, 그리고 은퇴로 인해 단절되는 소득을 충당하고 정서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관계망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이다.

30~40대는 공적연금시스템 고갈을 경험할 세대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경제적 준비를 더 많이 해야 하는 세대이기도 하지만, 3층 연금제도(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인이 어떤 상품에 가입하였는지, 수익률은 어떠한지 관심이 부족한 것도 현실이다. 연금은 은퇴 후 내 월급이다. 현재 월급이 중요한 만큼 은퇴 후 월급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가입자들이 ‘내 연금’에 관심을 가질 때 금융회사들도 더 열심히 수익률 제고에 힘쓸 것이다.

은퇴준비의 시작은 관심이다. 필자가 속한 서울대 노년은퇴설계지원센터와 생명보험협회가 함께 내놓은 ‘행복수명지표’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노후준비 수준을 점검하며 실천으로 옮기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개발했다. 행복수명지표는 행복한 노후를 위한 재무적 요소뿐 아니라 비재무적 요소까지 포함해 핵심 요소를 △신체·정신적 건강 △경제적 안정 △가족·친구 등 대인관계 △사회참여 및 여가활동 등을 포함한다. 이렇게 산출된 행복수명은 나와 가족 모두가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기간을 의미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의 행복수명은 74.9세이며 응답자의 행복수명과 기대수명의 차이는 8.2세였다. 각 가계가 평균적으로 약 8년간 행복하지 않은 노년을 보낼 수 있음을 의미하며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준비가 필요함을 뜻한다.

행복수명의 하위 요소별로는 건강수명이 76.4세, 경제수명 74.8세, 활동수명 73.3세, 관계수명이 75.7세였다. 네 가지 항목 중 응답자들이 노후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건강(35%)이 가장 높았고 다음이 경제적 안정(28.8%), 사회활동 및 여가활동(20.6%), 가족·친구 등 대인관계(15.6%)가 뒤를 이었다.

네 가지 측면에서 행복수명을 늘리는 방법을 생각해본다면 많은 이들이 중요한 요소로 꼽은 건강은 노후에 발생할 의료비, 간병비에 대한 대비가 있다면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다. 또한 경제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소액이라도 ‘1인 1연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대인관계와 사회활동은 많은 이들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인데, 우리나라 사회는 관계 지향적이다.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면 은퇴 후 상실감이 커지고 우울한 노년을 보내게 된다.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하는 적극적인 여가활동과 사회활동, 그리고 모임 등을 통해 은퇴 후 시간 활용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 활동수명과 관계수명도 늘어날 수 있다.

더 이상 은퇴 후 삶을 관심 밖에 두고 그저 막연하게 걱정만 해서는 안 된다. 나의 행복수명은 몇 세인지 측정해보고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며 행복한 노후를 준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노력한다면 은퇴 후 행복수명은 늘어날 수 있다.

최현자 <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노년은퇴설계지원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