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당신이 첫눈에 반한 그림을 사라
우리나라에서 미술 작품이 아주 적게나마 팔리기 시작한 건 이대원 화백이 경영하던 1956년 최초의 상업화랑 ‘반도화랑’이 생기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그 첫 개관으로 박수근 화백과 김종하 화백 두 사람의 전시를 열었다. 그림이 팔린다는 건 거의 기적과 같았던 시절에 화랑을 연 이대원 화백의 시작은 어쩌면 위대한 시작이었다. 사실 그림이 돈이 되지 않던 시절 화랑을 열었던 명동화랑 현대화랑 진화랑 선화랑 등의 오래된 화랑들의 노고를 잊을 수 없다.

그림이 팔리지 않아도 버티며 문을 열고 있었던 화랑 대표들도 지금 생각하니 예술가 못지않은 예술가들이었다. 출판사를 경영하시던 우리 부모님도 알고 보면 아주 오래된 대한민국 그림 컬렉터 1세대에 속하신다. 어릴 적 우리 집엔 그림이 참 많았다. 김환기 천경자 남관 박고석 변종하 류경채 등, 그 많은 그림 중에서 정말 값나가는 그림은 김환기와 천경자 그림이었다고, 그런데 그 그림만 예전에 팔아버렸다고 어머니는 가끔 아쉬워하신다. 하지만 다른 그림들이 그 그림만 못해서 값이 안 나가는 걸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필자의 대학시절 그림 값이 제일 비싼 화가는 남관 화백과 변종하 화백이었다. 요즘 가끔 특강을 하러 갔다가 미술대학생들이 남관이 누군지, 변종하가 누군지 모르는 걸 볼 때마다 슬픈 생각이 든다.

겨우 사십 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사이에 잊힌다는 게 말이 되는가. 앤디 워홀과 프리다 칼로와 쿠사마 야요이는 알면서 남관과 변종하와, 박고석과 한묵과, 이성자와 운보 김기창과, 그의 아내 박래현을 모르는 게 말이 되는가. 요즘 이중섭의 아내라는 영화가 나왔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시대 참으로 날렸던 동양화가 운보 김기창의 아내 박래현의 작품 세계가 아깝고 아깝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중 하나다. 우리가 우리 것을 소중히 할 때 우리의 역사는 빛날 것이다.

내 그림을 제일 처음 사준 분은 지금은 고인이 된 진화랑 대표 ‘유위진’ 여사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누군가 돈을 주고 산 첫 경험은 화가라면 누구나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참 고마운 일인데, 그때는 철이 없어 고마운 줄도 몰랐다. 사람들은 어떤 그림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가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실은 나는 비싼 그림이 꼭 훌륭한 그림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작가의 운과 시장의 흐름이 만나 매겨지는 그림 값, 박수근과 고흐는 가난하게 살다 죽었으나 사후 그들의 그림은 만질 수도 없는 고가의 그림이 됐다. 백 년 뒤 누구의 그림이 비싸질지 누가 알랴. 문득 그림이란 고마운 사람을 위해 그린 아름다운 선물이던 스무 살이 그리워진다.

나는 가끔 악몽을 꾼다. 전쟁이 나서 세상이 잿더미가 되면 화가나 그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무 소용없는 일이리라. 그림을 좋아해서 돈을 모아 그림을 사고 싶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게 얼마든 당신이 첫눈에 반한 그런 그림을 사라.

지금 이 시대 아무리 비싼 그림 값의 화가가 백 년 뒤 현재 많은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화가의 그림 값보다 더 비쌀 거라는 확신을 나는 정말 할 수가 없다. 생전에 단 두 점의 그림을 팔았던 ‘빈센트 반 고흐’를, 가난했던 ‘이중섭’과 ‘박수근’을 기억하라.

황주리 < 미술가 >